"한·중 대북 압박 안 하면 미, 북 핵시설 폭격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은 18일 "한국과 중국이 북한을 압박(coercion)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북한 핵시설을 파괴하는 군사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그간 북한에겐 협상 경험에서 알 수 있듯 빈말이 아닌 무력을 내세워야 외교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한국과 중국이 대북 식량.기름 지원을 끊는 게 가장 좋은 압박책"이라며 "그러나 두 나라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강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라고 강조했다. 1994년 북한 핵시설 폭격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는 페리 전 장관은 "핵실험을 마친 북한이 핵시설을 확대해 매년 10개가량의 핵폭탄 제조 능력을 갖추는 건 (미국이) 강압조치를 취하는 것보다 위험한 일"이라며 "미국은 설사 의도하지 않은 위험한 결과가 초래된다 해도 (핵시설을 파괴하는)군사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일 서울 방문 가능성"=페리 전 장관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한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대사는 "북한은 올해 한국 대선에서 집권 여당이 승리하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김정일이 서울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이 남한 내에 광범위한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한.미 분열도 조장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08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나면 클린턴 전 대통령을 북한으로 초청해 경수로와 식량.석유를 지원받으려고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힐에게 최대 권한 줘라"=청문회를 주최한 민주당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아주 신뢰한다"며 "힐에게 최대의 유연성이 부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제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양자회담을 개최하겠다'고 한 힐 차관보의 말은 고무적"이라며 "봄에 평양을 방문해 북한에 실질적인 대화 진전의 중요성을 강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윌리엄 페리와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윌리엄 페리가 1999년 5월 방북 후 작성한 미국의 대북 접근법. 북한과 미국이 3단계에 걸쳐 상호 위협을 줄이면서 관계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단계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고, 2단계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중단, 그리고 3단계로 북.미 관계 정상화를 권고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