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업체 법정 공방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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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생수 내국인 상대 시판문제를 둘러싸고 생수 제조업체와 소관부처인 보건사회부 사이에 법정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76년부터 보사부가 생수영업을 허가하면서 「한국사람」에게 팔아서는 안된다는 애초 지켜지기 어려운 허가조건을 단데서 비롯된 이 다툼은 업계·당국의 나름대로 일리 있는 논리가 팽팽히 맞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현재 이 문제와 관련해 법원에 걸려있는 사건은 형사사건 1건과 행정소송 4건 등 모두 5건.
최초의 사건은 89년 11월 풀무원샘물 등 4개 업체가 내국인에게 생수를 시판한 혐의로 고발당해 검찰이 벌금 1백만∼50만원에 약식기소하자 정식개판을 청구한 것으로 지난해 2월 선고 유예판결을 받아낸 뒤 업계·검찰 모두 항소, 2심 계류중이다.
행정소송으로는 지난해 8월3일 내국인 판매를 이유로 5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당한 설악 음료가 낸 소송과 이에 고무돼 며칠 뒤에 고려종합 등 8개 생수업체가 낸 부담(허가조건)무효확인소송이 있고, 이후 지난해 11월말 같은 이유로 괴징금 부과처분을 받은 한국 청량음료 등 8개업체 및 제주 생수가 별도로 낸 과징금 부과 처분취소 청구 소송을 포함, 모두 4건이다.
이들 법적 다툼의 내용은 약간씩 다르지만 핵심은 시판금지에 대한 논란이다.
현재 허가업체 14개사가 모두 재판에 걸려 있고 이들은 냉수 영업허가 조건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즉 생수 내국인 판매금지 조항은 ▲맑은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헌법10조(행복추구권)에 위배되고 ▲내·외국인을 구별해 국내거주 외국인에게는 판매를 허용하고 내수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11조(평등권)에 어긋나며 ▲판매대상을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헌법15조(영업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사부는 계층간 위화감을 들어 내국인 시판금지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보사부는 업체들이 낸 소장에 대한 답변서에서 『생수를 무제한 시판할 경우 대다수 국민들에게 수도물이 식수로 적합치 않다는 불안감을 갖게 할뿐더러 생수를 수시로 구입해 상용할 수 있는 여유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며 반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업체들은 『소득 계층간 위화감을 들먹이려면 정수기업체에 대해서도 내국인 판매를 금지시켜야 할 것』이라며 『생수업을 정식으로 허가한 76년 내국인 판매를 금지시킬 당시 통용되던 논리를 생수소비가 어느 정도 보편화된 현재까지 고집하는 것은 고식적인 발상』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계류중인 4건의 행정소송은 한 두 차례 재판이 열린 정도지만 쌍방의 의견이나 증거자료가 이미 충분히 제출된 상태여서 재판부의 최종판단만 남았다.
이와 관련해 생수 내국인 시판에 대한 최초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형사지법의 1심 판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 형사지법 강용현 판사(당시)는 지난해 2월 4개 생수업체에 대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리면서 『내국인에게 생수를 팔 수 없도록 제한한 보사부 허가조건은 국민기본권·평등권에 위반된다』고 인정하면서도 『허가조건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무효가 될 정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며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선고 유예판결을 내렸었다.
선고 유예판결이 통상 가벌성이 적어 무죄에 가까울 경우 내려지는 판단이라는 점에서 당시 판결은 벌금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생수업계 측의 승리로 받아들여졌었다.
법원에 계류중인 5건의 생수사건을 총괄해 맡고있는 이재식 변호사는 『내국인 판매금지라는 일종의 행정처분에 대한 옳고 그름을 다투는 문제인 만큼 형사 지방 법원보다는 행정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고등법원이 판단할 사항』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이 사건판결이 미칠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은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입법 미비로 야기된 문제인 만큼 담당 재판부들이 은근히 보사부의 양보에 기대를 거는 눈치』라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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