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1)<제85화>나의 친구 김영주(26) 이용상|조선인병사 수색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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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호출을 당한 내가 대장 방에 들어가 보니 젊고 팔팔한 견습사관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중 평소부터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니시다(서전)사관이 벼락같이 노성을 질렀다.
『이 후보생! 너는 알고있지? 아라이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너는 알지?』
『내가 그것을 알면 왜 말리지 않았겠습니까. 나는 모릅니다.』나는 니시다 사관을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한 다음 대장 오카모토에게 『대장님, 내가 아라이 그놈을 꼭 찾아내고야 말겠습니다. 그러니 제게 우리 조선병사 전원을 오늘 하루만 맡겨주십시오. 이 근방을 모조리 뒤져서 우리 손으로 잡아내고야 말겠습니다.』
방안의 공기는 무겁고 대장은 말이 없었다.『대장님, 그놈이 더 멀리 가기 전에 빠를수록 좋겠습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리고…』내가 말을 계속하려 하자 니시다가 『대장님, 그것은 안됩니다. 이용상후보생도 조선놈입니다. 저놈 뱃속을 어떻게 믿는단 말입니까』하며 내 말을 가로막았다.
순간 나는 니시다를 노려보며 오카모토에게 『아닙니다. 대장님』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때 대장 오카모토가 큰 소리로 『둘 다 그만 둬. 결정은 대장이 한다.』니시다와 나의 아슬아슬한 순간을 이 한마디로 막아버렸다.
부대는 평소의 조직대로 아라이 수색전에 나섰다. 수색전에 나선 나는 앞장서서 뛰어다녔다. 아라이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는 갔어도 수십리는 더 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수색하는 척 하면서 중국농민이 보이면 쫓아가서 말을 걸었다.
『어젯밤 일본병사 하나가 없어졌다. 그 병사는 실은 일본인이 아니라 억지로 끌려온 조선사람이다. 중국군에 가고싶어 떠난 사람이니 잘 부탁한다. 나도 조선사람이다.』
이런 말을 듣고 난 중국농민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부탁하고 돌아와서는『전혀 도망병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젯밤에 개 짖는 소리도 못 들었답니다.』그렇게 하기를 수십 차례.
시간이 되어 수색작전은 허탕(?)을 치고 철수해 버렸다. 부대에 중국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의 각본 대로였다.
저녁이 되자 대장 오카모토는 당번을 시켜 나를 불렀다. 오카모토가 계속 나를 신임해 줄 것인지, 아니면 백팔십도 달라질 것인지 착잡한 생각을 하면서 대장 방으로 갔다.
그는 의외로 오늘 수색작전에서 보여준 나의 적극적(?)인 활동을 치하하면서 저녁이나 같이 들자는 것이 아닌가.
됐다. 이 정도면 만세다. 아라이의 탈출에도 불구하고 오카모토의 태도에서 나는 희망적인 것을 느꼈다.
『이 후보생, 앞으로 조선병사들의 도망을 방지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는 더 이상의 탈출만이라도 막아보자는 속셈인 것 같았다. 짐작했던 대로의 질문이었으나 나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탈출을 근원적으로 막으려면 1910년의 소위 한일합방과 일본의 동양침략부터 따지고 봐야할 판이 아닌가.
이 군대가 우리 조선군대라면 조선병사가 탈출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이 군대는 일본인들로 채워져야 할 일본군대인데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지금 이 군대는 군국주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갖은 비인도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침략군인 것이다. 일본은 어찌하여 여기에 조선사람들을 강제로 끼어 들게 했으며 끝까지 남아 주기를 바란단 말인가.
나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도망병이라는 용어 자체가 듣기 싫었다. 일본인이 볼 때는 「도망」이지만 조선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도망이 아닌 것이다. 어디까지나 「탈출」인 것이다.
그리고 원수의 나라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겠다는 것은 의거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장 오카모토에게 할 대답을 궁리하고 있었다. 【이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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