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먼 특약특파원 취재기(걸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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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식사는 으레 공습으로 중단/이상한 외국인들 주로 남아/전쟁에도 단조로운 규칙성
바그다드 공습후 이 도시에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3명의 서방기자들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브루스 체스먼기자(영 데일리 텔리그라프지 서울특파원)는 개전초 2주간의 바그다드 모습은 기이함의 연속이었다고 전했다. 다음은 지난 3일 서울로 무사귀환한 중앙일보 특약특파원 체스먼기자의 바그다드 체험담 최종 전문이다.<편집자주>
프랑스의 신나치주의자 니콜라는 걸프전쟁 개전이후 공습하의 바그다드에 남았다.
가죽장화와 넥타이·흰셔츠의 정장차림으로 늘 멋을 내고 다니는 니콜라의 바그다드 잔류이유는 전폭기를 몰고 미군 레이다망을 피해다니며 사우디주재 미군최고사령부를 폭격하고 싶은 것이었다.
늘상 오만한 분위기를 풍겨 「공작부인」이라는 별명을 갖게된 한 오스트리아 여인도 바그다드에 남았다.
그녀는 달리 마땅히 할일이 없었기 때문인 듯 했다.
소련 기자 5명의 바그다드 잔류이유는 돈이 없어서였다.
그들은 전쟁상황임에도 불구,바그다드에 남아 비누를 쓸 수도 있었고 최고의 음식을 즐겼다.
한 독일여인의 바그다드 잔류이유는 이라크인과의 사랑 때문이었다.
이들이 머무르고 있는 알 라시드호텔은 한때 중동 최고급의 별 다섯개짜리 호텔이다.
알 라시드호텔의 배경을 이루는 바그다드 시내 전쟁의 참화는 지난2주간 다국적군의 잇따른 공습을 증언이라도 하듯 이도시에 뒤처져 남아있는 이들 기이한 인물들 못지 않게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이라크에 계속 머무르는 이유는 4일간의 구금생활로 수척해진 내 모습 때문이었다.
이라크인들은 이라크 TV에 방영된 다국적군 조종사들의 몰골이 얼굴의 멍든 자국을 제외하면 너무나 내 모습과 흡사해 다른 서방기자들을 바그다드로 취재여행하도록 유도하는데 장애요인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그다드 잔류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란 정신이상에 걸리지 않도록 기여한 매일매일의 일상적 의식뿐인 것처럼 보였다.
전쟁은 폭탄과 미사일로 계속되는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단조로운 규칙성을 갖고 있었다.
항상 두조각의 빵과 한개의 계란으로 차려지는 아침 식사는 공습으로부터도 신성불가침의 것이었다.
아침식사시간에 공습이 없다는 것은 마치 다국적군이 우리 바그다드잔류 기자들에게 다음에 계속될 폭격상황을 바쁘게 취재할 것을 배려,약 한시간정도의 휴식시간을 주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아침 식사뒤 기자들은 정원에서 서성댔다. 나는 이런 행렬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이라크 공보부 관리들과 그날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곤 했다.
나 역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고 있었지만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언제나 민간인 사상자들만 취재하길 좋아하는 팔레스타인 기자들을 포함,보도진이 떠나고 나면 호텔에 남아있는 「기이한 사람들」은 학교나 교회로 안내됐다.
바그다드에 대한 첫공습은 주로 정오쯤 다시 시작됐다. 점심 식사는 종종 폭격으로 중단되곤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방공호로 대피했지만 몇몇 강심장의 사람들은 그냥 식사를 계속했다.
나는 정오무렵 호텔의 내 방에서 건물3동이 공습에서 직격탄을 맞아 부서지는 것을 목격했다. 오후에는 또다른 한가한 시간이 찾아오는데 호텔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주로 풀장 근처나 정원에서 보낸다.
한번은 무료함을 깨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스커드미사일 1기가 풀장 근처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갑자기 하늘 오른쪽으로 비켜 어디론가 날아갔다.
아침식사전까지 계속된 공격은 보통 매일 오전 6시쯤 천연수로 목욕하는 동안 호텔방 창밖을 통해 바라다보였다.
개전초기에는 물이 없어 저녁식탁에 모이면 통상적으로 물부족에 대한 얘기가 심심파적거리의 대상이 됐었다.
주요 공습은 아침 식사전 일찌감치부터 시작되는데 공습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두 집단으로 나뉜다. 하나는 방공호에 남아 있기를 원하며,다른 그룹은 방에 남아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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