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不保其往(불보기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님 당시에 호향(互鄕)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악(惡)에 깊이 물들어 있어서 선(善)에 관해 이야기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지역 소년이 공자를 찾아와 뵙자, 제자들이 ‘뭣 때문에 저런 녀석을 만나시는 게지?’하며 의아해했다. 이에 공자는 “깨끗해지고자 찾아왔다면 그 깨끗함으로 나아가려는 마음만 받아들이면 된다. 지난 잘못을 마음에 담아두고 되뇔 필요가 무엇이겠느냐?”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뉘우친 지난 잘못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야 한다는 뜻의 ‘불보기왕(不保其往)’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保: 간직할 보, 往: 지난 일 왕. 지난 잘못을 마음에 담아 되뇌지 마라. 23x65㎝.

保: 간직할 보, 往: 지난 일 왕. 지난 잘못을 마음에 담아 되뇌지 마라. 23x65㎝.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아야겠지만, 뉘우친다면 확 트인 가슴으로 화끈하게 용서해야 한다. 용서를 비는 사람의 지난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계속 되뇌는 것은 앞서 잘못한 그 사람의 잘못보다 더 큰 죄를 범하는 행위다. 모든 인간관계, 특히 부부 사이의 불화는 돌아보며 탓하는 데에서 싹트고, 미래를 내다보며 허덕이는 데에서 깊어진다. “그때 당신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망한 거야”로 시작하여 “흥! 어느 세월에 순이네처럼 부자가 되겠어?”라고 끝나는 말은 이혼을 자초하는 위험한 대화다. 뒤돌아보며 탓하지 말고, 앞 내다보며 허덕이지 말자.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