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위기때 나타난 김대업, 병역의혹 ‘악마의 재능’ 펼쳤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2.21

왜 지금 김대업인가

이른바 ‘김만배 대선 조작’ 의혹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한 사람이 함께 회자하고 있다. 김대업이다. 그는 흔히 ‘원조 대선 조작’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다.
보다 정확한 팩트에 기반을 둔다면 수식어 앞에 ‘진보 진영’이라는 단어를 추가해야 할 듯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수 세력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던 선거 공작을 반대 진영이 거의 처음 시도한 것으로 의심받는 사건이라서다. 뒤집어 보면 진보 진영의 도덕적 우위 이미지가 깨진 첫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갈수록 혼탁해지는 선거판을 보면 앞으로도 유사 사건은 계속 터져 나오고, 김대업 역시 두고두고 소환될 것 같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거짓말이 들통 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배후는 없었을까, 검찰 수사는 공정했을까, 그의 주장에는 과연 일말의 진실도 담겨 있지 않았을까. 잊힌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미처 몰랐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즐거움을 기대하면서 한·일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의 여름으로 돌아가 보자.

〈제2부 김대업과 정치·검찰①〉 

그 기자회견 나도 합시다. 내한테는 인권도 없소?

분노를 감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2002년 8월 9일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기자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기자들과 선객(先客) 모두 뜻밖의 기습에 말문이 막혔다.

그는 강해 보였다. 풍상이 깎아 놓은 바윗돌 속에 세월이 가로세로로 선을 그어놓은 것 같았다. 고저와 강약이 분명한 경상도 억양은 급하고 거친 성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김대업은 항상 떠들썩했다. 그는 늘 화가 난 듯 보였고, 검찰청이 떠나갈 듯 목소리를 키웠다. 중앙포토

김대업은 항상 떠들썩했다. 그는 늘 화가 난 듯 보였고, 검찰청이 떠나갈 듯 목소리를 키웠다. 중앙포토

돈을 받고 군인 되길 거부하는 이들을 도와주다가 군복을 벗은 전직 군인이자 병역 비리 브로커.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을 정점으로 하던 정치 세력으로부터 ‘의인’으로 추앙받던 인물. 그는 김대업(당시 40세)이었다.

왜 내 전과를 공개하고 뒷조사를 하는 거요? 내 인권은 안중에도 없소?

시종 미소 띤 얼굴과 정제된 논리로 김대업의 주장을 논파하던 ‘이회창의 율사’들은 말문이 막혔다. 어설픈 맞대응에라도 나선 건 시간이 꽤 지난 뒤였다.

“녹취 테이프가 있다면서 왜 못 내놓는 거요? 그거나 먼저 내놓으시오.”

반격은 즉각적이었다.

“때가 되면 다 내놓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거대 정당이 뭐가 아쉬워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거요? 잘됐네. 여기서 공개 토론이나 한번 해봅시다.”

그 난장판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었다. 김대업은 그들과 진흙밭을 뒹굴며 함께 더러워지길 원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발을 뺐다. 그들의 뒤통수에 김대업의 고성이 따라붙었다.

뭐가 무서워서 도망가는 거요? 귀족들이라 나하고는 토론 못 하겠소? 에이 한나라당! 비열하고 X 같은 것들!”

롤러코스터 노무현, 절체절명의 순간에 김대업이 나타났다

대선의 해인 2002년. 임종을 앞둔 김대중 정권은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