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김대업과 정치·검찰②〉
조사실은 싸늘하다. 엄동(嚴冬)이라면 정도가 자심(滋甚)하다. 냉기의 강도는 피조사자의 사회적 지위에 정비례한다.
신년 벽두인 2002년 1월 4일 거기 붙잡혀온 김길부(전 병무청장·이하 경칭 생략)는 간신히 넋을 부여잡고 있었다. 삼성(三星) 장군 출신의 차관급 외청장이던 그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겪는 수모였다.
책상과 의자 몇 개,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긴급 체포와 밤샘 조사가 일상이던 시절이다)가 전부인 그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도 드나들었다. 검·군 병무 비리 합동수사반 소속 수사관인 그들은 김길부를 쥐락펴락하면서 혼을 빼놓았다.
마구잡이로 휘둘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책상 맞은편에는 단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두터운 패딩 점퍼를 입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저도 대구 사람입니다. 같은 대구 사람끼리 조사 좀 합시다.
그는 영락없는 수사관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사관이 아니었다.
수감자 김대업, 수의 차림으로 합수반 출정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기결수 김대업이었다.
그가 사기 혐의로 구속된 건 2001년 3월. 합수반에서 한창 병역 비리 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하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