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400만원 벌던 배달 기사, ‘소주병’ 무덤에 가둔 실연

  • 카드 발행 일시2024.02.06

집 안에 들어서자 시취(屍臭)에 숨이 막혔다.
창문은 모두 꼭꼭 닫혀 있었고 보일러는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전기장판까지 켜놓은 채였다.

쓰레기는 현관부터 널브러져 있었다.
방을 향해 들어갈수록 넘치는 쓰레기.
들어오지 말라며 바리케이드를 쌓아 놓은 듯싶었다.
쓰레기집 청소를 의뢰받은 거 같았다.
지독한 시취만 아니었으면….

쌓여 있는 것은 빨간 뚜껑 소주병이 압도적이었다.
그 외에는 택배로 받은 즉석식품들 정도.
소주는 이미 비워져 빈 병만 가득했다.
이렇게 많은 소주를 얼마 동안 마셨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 정도로 술만 마시고 산다는 것은 삶을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술에 잠겨, 술병에 깔려 죽겠다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주방 한쪽에서 발견된 비닐봉지에도 빨간 소주 뚜껑 수백 개가 모아져 있었다.
뜯지도 않은 택배박스에는 즉석조리 전복죽이 들어 있었다.
제대로 된 안주도 없이 들이부은 소주에 몸이 버틸 수가 있었겠나.

고인의 나이는 내 연배의 50대 초반이었다.
요즘엔 한창 나이다.
건강이나 의욕이나 젊은 사람들 못지않다.
삶을 포기하기엔 이른 나이다.

유품에서 나온 몇 달 전 건강검진 기록엔 위궤양 직전에 만성 위염과 당뇨병 소견이 있었다.
당연히 음주와 흡연은 삼가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고인은 마치 생명을 더 단축하려는 듯 심각한 수준의 음주를 감행한 것 같았다.

사후 오랫동안 방치된 안방에는 이미 부패물이 한가득 찰랑거렸다.
이불까지 푹 젖어 있었고, 그나마 멀쩡한 것이 수백 개의 술병이었다.
월세는 수개월째 밀려 집주인이 보낸 퇴거명령 내용증명도 나왔다.

고인은 오토바이 배달원이었다.
고독사 현장에서 알게 되는 직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성실해서 오토바이 배달로 월 400만원 정도는 벌어들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