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떠받든 발가벗은 그들…대담하다, 남인도의 미술

  • 카드 발행 일시2024.01.26

연꽃모자에서 동전을 분수처럼 뿜어내는 이 배불뚝이 조각, 어디서 왔을까요. 이 형상은 옛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풍요로운 자연의 정령 약샤(약시)입니다. 남성형은 약샤, 여성형은 약시라 불리죠. 3세기 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짧은 다리에 배가 볼록 나온 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네요. 모자에서 기다란 원통이 뻗어나오는데 이게 동전을 뿜어낸다는 의미랍니다.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 3세기 말, 나가르주나콘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 3세기 말, 나가르주나콘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 약샤 조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4월 14일까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스투파(stupa)는 불교에서 부처나 훌륭한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탑의 원형이 인도의 스투파인 거죠. 인도 전역의 스투파는 한때 그 수가 8만4000개에 달했다지만 원형으로 보존된 건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19세기 이후 서구 고고학자들이 경쟁적으로 발굴해 ‘산치 스투파’처럼 위풍당당한 유적이 복원됐습니다. 나머지는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것처럼 파편과 장식 조각들만 전해집니다.

반구 모양의 스투파가 탑의 원형이란 것 외에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것은 불상이 만들어지기 전 인도인들이 석가모니를 표현한 방식입니다. 석가모니는 기원전 480년쯤 열반에 들었는데, 그 후 약 500년간 인도인들은 그를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걸 삼갔습니다. 대신 바퀴나 족적(발 모양)만 새겨놓고 ‘이걸 부처라 생각하고 경배하자’ 이런 식이었죠. 그러다 기원전 1세기 전~기원후 1세기 즈음해 불상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4세기는 이보다 한참 뒤라서 우리나라는 불교미술과 불상이 함께 시작합니다.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주 산치. 벽돌로 쌓아올린 불탑 제1스투파. 산치 불교 유적지의 상징이다. 중앙포토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주 산치. 벽돌로 쌓아올린 불탑 제1스투파. 산치 불교 유적지의 상징이다. 중앙포토

이번 전시는 데칸고원 동남부 지역에 해당하는 남인도 미술 소개에 중점을 둡니다. 전시 자체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기획전(2023년 7월~11월)을 가져온 거예요. 메트 개관 150주년(2020년)을 기념해 델리국립박물관 등 인도 12개 기관과 영국·독일·미국 등 4개국 18개 기관의 소장품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일부는 인도 바깥으로 나온 게 이번이 처음입니다. 설사 인도까지 가서 유물을 만난다 해도 언어와 풍습 차이로 이해가 쉽지 않은데 ‘스투파의 숲’은 한국 관객 눈높이에 맞춰 해설과 디지털 영상을 풍부하게 곁들입니다.

인도 미술도 낯선데 남인도 미술이라니. 겨울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어도 ‘무얼 어떻게 봐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분들을 위해 강희정 서강대 교수(동남아학)의 도움을 받아 전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을 짚어드립니다. 동아시아 전문가인 강 교수는 ‘난생 처음 한 번 만나는 동양미술 이야기’(사회평론) 1권에서 불교미술 원형으로서 인도 미술을 체계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시리즈 3권에선 국보 금동반가사유상이 영향 받은 서역과 실크로드의 미술을 소개하기도 했죠. 생명력이 넘실대는 남인도 불교미술을 만나러 갑니다.

부처 사리 모신 스투파, 인도를 사로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