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야말로 혁명가였다…‘옆구리 탄생’ 속 비밀 코드

  • 카드 발행 일시2024.01.24

“삶이 고통의 바다”라고 여기는 우리에게 “삶은 자유의 바다”라고 역설하는 붓다의 생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붓다뎐’을 연재합니다. ‘종교’가 아니라 ‘인간’을 다룹니다. 그래서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지지고 볶는 일상의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에게 붓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돼라”고 말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돼라”고 합니다. 어떡하면 사자가 될 수 있을까. ‘붓다뎐’은 그 길을 담고자 합니다.
20년 가까이 종교 분야를 파고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예수를 만나다』『결국, 잘 흘러갈 겁니다』등 10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3년에 걸쳐 ‘백성호의 예수뎐’을 연재한 바도 있습니다. 붓다는 왜 마음의 혁명가일까, 그 이유를 만나보시죠.

 ② 아기 붓다, 왜 하필 옆구리로 태어났나


# 붓다가 태어난 땅, 룸비니

나는 인도의 룸비니로 갔다. 붓다가 나고 자란 땅이다. 히말라야 산맥 아래 북인도였다. 지금은 네팔 영토다. 그래서 인도와 네팔은 종종 다툰다. “붓다는 인도 사람”이라는 인도 측 주장과 “붓다는 네팔 사람”이라는 네팔 측 주장이 맞선다. 그런데 인도냐, 네팔이냐 따지는 건 지금의 기준일 뿐이다. 당시에는 그런 국경도 없었다. 붓다는 그저 카필라 왕국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코살라국·마가다국·밤사국·말라국 등 인도에 16개 왕국이 있었다. 그중 하나인 카필라 왕국은 아주 작고 약한 나라였다.

버스는 룸비니를 향해 달렸다. 창 밖의 풍경은 무척 낯설었다. 1950년대나 60년대 한국의 거리 풍경이 저랬을까. 가난한 나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붓다의 유적은 유피주와 비하르주에 유독 많다. 인도에서도 북부의 유피주와 비하르주는 궁핍한 오지가 많다. 그래서일까.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내내 가난의 풍경과 마주쳐야 했다.

 붓다가 탄생한 네팔의 룸비니 동산에서 만난 사두. 맨발로 세상을 유행하는 수행자인 사두는 머리를 깎지 않고 계속 기른다. 백성호 기자

붓다가 탄생한 네팔의 룸비니 동산에서 만난 사두. 맨발로 세상을 유행하는 수행자인 사두는 머리를 깎지 않고 계속 기른다. 백성호 기자

룸비니로 가려면 인도와 네팔의 국경을 통과해야 했다. 버스는 국경 앞에서 멈추었다. 말이 국경이지 경계선은 허름했다. 작은 검문소와 낡은 바리케이드가 있을 뿐이었다. 총을 든 군인도 보였다. 예전에는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절차가 무척 간소했다. 지금은 달랐다.

인도 측 출입국사무소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무척 길었다. 하루 전날 인도에서 네팔로 갔다가, 다시 인도로 돌아간다는 한국인 순례객을 만났다. 그는 “어제는 오후 3시에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해 8시간 동안 줄을 섰다. 밤 11시가 돼서야 절차가 끝나 네팔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네팔의 등산객과 불교 성지 순례객 등 방문객은 많은데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네팔로 넘어가자 경치가 달라졌다. 뭐랄까, 좀 더 정돈되고 깔끔한 분위기였다. 버스는 룸비니에 도착했다.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이다.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걸음을 재촉했다. 보고 싶었다. 붓다가 태어났다는 장소.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장소. 그리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읊었다는 장소. 그 전승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