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핏줄에 더러운 피 넣어?” 시어머니 욕설, 며느리의 죽음

  • 카드 발행 일시2024.01.12

한 여자 환자분이 찾아왔다. 말간 얼굴을 하고 혼자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지만 눈빛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환자는 나의 한마디 한마디를 굉장히 집중해서 들어 주었다. 대화가 끝나가자 환자는 다급히 내 가운의 소매 끝을 잡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 진짜 정말로 살고 싶어요.”

살고자 하는 의지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환자를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서 “네, 저도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는 다시 가운을 꽉 쥐어 잡으며 한 번 더 말했다. “네, 저, 어떤 상황에서도 진짜, 살고 싶어요.”

같은 말을 또박또박 반복하기에 뭔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건가 싶은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금세 잊혔다. 약간의 찜찜함만 남았던 첫 만남이 지나고, 시간이 흘렀다. 항암 치료를 몇 달간 쉬지 않고 받아 왔던 환자는 중증의 빈혈이 생겼다. 항암 치료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적혈구 수치가 떨어진 것이었는데, 어느 날 시행한 혈액검사에서 정상 수치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드물지는 않은 일이나 이 환자에게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적혈구가 떨어진 적은 처음인 것 같아 처치 과정을 설명하고자 환자의 병실로 들어갔다. 항상 말갛게 유지되던 얼굴은 빈혈 때문인지 허옇게 떠 있었다. 그럼에도 음식을 꼭꼭 씹으며 차분하게 식사하고 있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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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혈받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혈액검사에서 빈혈 수치가 6으로 나오셨어요. 항암 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에서는 종종 나타나고, 수혈받으면 수치도, 컨디션도 곧잘 회복되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전하기 위해 입을 뗐다. “오늘 수혈받으셔야….”

갑자기 쇠 밥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튕기며 내는 시끄러운 소리에 내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네? 수혈요?” 환자의 물음에 대답하려고 했지만 몇 초의 순간 만에 허옇게 뜬 수준을 넘어서서 창백하게 질려버린 환자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입이 다물어졌다. 환자의 손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잠깐의 적막이 흘렀고, 먼저 입을 연 건 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