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이순신·세종대왕 뒤에 이승만·박정희 동상 세워야” (70)

  • 카드 발행 일시2023.12.29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이번 회는 JP가 2015년 구술 당시 ‘70주년 광복절’을 맞아 그의 역사관과 국가관을 피력한 내용이다. 특히 그가 평생 챙겨왔던 역사적 기념물과 공공미술에 대한 소회를 담았다. 또 자신이 유년 시절부터 익혀 온 한학과 붓글씨에 대한 조예와 은근한 자부심도 엿볼 수 있다.

2015년 8월 15일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2015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만8813달러로 집계됐다. 처음으로 3만 달러가 넘어선 것은 2017년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70년 전 이 땅이 얼마나 빈곤하고 비참했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제 식민과 6·25전쟁이 물려준 한국 사회는 황폐함 자체였다. 광복 15년이 지나 5·16혁명이 일어난 1961년에도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에 불과했다. 아프리카의 가나보다 못했다. 이렇다 할 기술도, 자원도 없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능력과 자본도 문제였지만 우리에게 더 절실했던 건 의지와 자신감이었다. 제대로 된 나라, 잘 사는 나라 한번 만들어 보자는 의욕과 정신이 필요했다. 나라 재건의 의지는 그때의 시대정신이었다. 1966년 ‘애국선열 조상(彫像) 건립위원회’가 발족했다. 민주공화당 의장이었던 내가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조상건립위는 민족적 자부심과 국민적 재건 의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일대 정신운동으로 기획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게 “세종로 네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하고 외경의 대상이 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주문했다. 그 위인은 바로 민족의 영웅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무찔러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해군 제독이 ‘전쟁의 신(神), 바다의 신’으로 숭앙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423회 탄신일을 하루 앞둔 1968년 4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오른쪽)과 육영수 여사가 광화문 세종로에서 열린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에 참석해 동상을 가린 막을 벗겨내고 있다. 당시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주도한 애국선열 조상 건립위원회의 첫 작품이다. 사진 국가기록포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423회 탄신일을 하루 앞둔 1968년 4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오른쪽)과 육영수 여사가 광화문 세종로에서 열린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에 참석해 동상을 가린 막을 벗겨내고 있다. 당시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주도한 애국선열 조상 건립위원회의 첫 작품이다. 사진 국가기록포털

충무공 동상의 제작은 김세중 서울대 미대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문교부 국사편찬위원회와 국내의 권위 있는 사학자들로부터 고증을 받았다. 또 충무공 유적지들을 꼼꼼히 답사하면서 수많은 스케치를 모아 형상을 확정지었다. 이렇게 해서 68년 4월 27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에 높이 18m에 달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제막했다. 조상건립위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제막식에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3부 요인이 참석했고 내가 경과보고를 했다.

🔎 인물 소사전: 김세중(1928~86)

조각가. 서울대 미대 조각과 1회 졸업생으로 이후 서울대 교수와 미대 학장을 지내면서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을 역임했다. 광화문광장의 충무공 이순신(1968) 장군과 장충단공원 쪽 남산 2호터널 입구의 유관순(1970) 동상이 김 교수의 대표적 작품이다. 양화대교 위에 유엔군자유수호참전기념탑 부조(1963)도 만들었지만 81년 확장공사 때 철거됐다. 숙명여대 명예교수를 지낸 김남조(1927~2023) 시인이 그의 부인이다.

나는 박 대통령이 헌납한 비용으로 충무공 동상을 세운 것이라고 밝히면서 “백의종군의 높은 뜻으로 왜적을 물리쳤던 충무공 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을 보위하며 국토 통일을 성취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 뒤에 여기저기서 이순신 장군이 오른손에 장검을 쥐고 있어 항복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며 시비를 걸었다. 군사훈련을 지휘할 때는 얼마든지 오른쪽에 칼을 들 수 있다. 스스로 창의적인 발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가 먼저 창조해 놓으면 꼭 이런 시비들을 걸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