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경호 보니, 이거 참…” 日재계 거물이 본 섬뜩 장면 (69)

  • 카드 발행 일시2023.12.27

1978년에 접어들면서 차지철 실장이 이끄는 청와대 경호실은 정상적인 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상식 밖의 일을 벌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밤중의 전차 시위였다. 경복궁에 주둔하던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에 전차 1개 중대를 갖다 놓고 밤마다 출동시킨 것이었다. 시민들이 곤히 자고 있을 시간인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전차 여러 대가 지축을 쿵쿵 울리면서 청와대 부근을 빙빙 돌았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동네가 들썩들썩했다. 인근 주민들이 처음엔 전쟁이 난 줄로 알고 불안해할 정도였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누군가 묻자 차지철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누구든지 대통령을 방해하는 자는 걸리면 큰일난다는 것을 공공연히 알리기 위해서다.” 위압감을 심어줘 대통령은 불가침의 성역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시위였다는 얘기다.

1976년 12월 15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아들 지만군의 생일축하연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따라주는 와인을 차지철 경호실장이 공손하게 받고 있다. 이 축하연엔 근혜·근령·지만 세 남매가 함께 참석했다. 유신 말기 박 대통령의 신임을 독차지한 차지철은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사진 국가기록포털

1976년 12월 15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아들 지만군의 생일축하연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따라주는 와인을 차지철 경호실장이 공손하게 받고 있다. 이 축하연엔 근혜·근령·지만 세 남매가 함께 참석했다. 유신 말기 박 대통령의 신임을 독차지한 차지철은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사진 국가기록포털

차지철은 두 가지 속셈이었을 것이다. 탱크 시위의 첫 번째 목적은 자기가 아니면 박정희 대통령을 보필할 사람이 없다는 점을 대통령에게 인식시키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차지철 자신이 그런 위치에 있다는 것을 주위에 알리기 위해서다. 한밤중에 청와대 바로 옆을 탱크가 한 대도 아니고 여러 대가 빙빙 도는데 박 대통령에게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박 대통령이 그만두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차지철은 바로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대통령 각하를 지키겠다면서 한밤중에 전차까지 끌고 돌아다니는 차지철을 믿음직스럽게 여긴 듯했다. 차지철도 대통령이 묵인하자 그런 엉터리 짓을 계속했다.

평소 나는 차지철을 따로 만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마주쳐도 지나가는 말로 “각하 잘 모시게”라고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새벽의 전차 출동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 우연히 만난 차지철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구먼”이라며 정색하고 지적했다. 그러자 차지철은 “아, 그렇게 무섭게 해야 합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다 양해하신 일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기가 찼지만 대통령이 승낙하셨다고 하니 나로선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대통령의 권력이 비대해질수록 그에 정비례해 차지철의 경호실은 더 무지막지하게 변해 갔다.

박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은 차지철은 정치에도 공공연히 개입했다. 육군 헌병감 출신의 이규광을 중심으로 한 비공식 정보기관을 운영하면서 정치인 뒷조사를 하는가 하면 유신정우회와 민주공화당에 자신의 심복 의원들을 심어두고 여당과 국회까지 좌지우지(左之右之)하려 들었다. 공화당이 차지철 손에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어느 날 김계원 비서실장이 내게 “명색이 비서실장인데 나는 겉만 핥고 있습니다”면서 하소연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차지철 경호실장은 오전 8시에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면 오전 11시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이 오전 내내 경호실장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비서실장은 물론 국무총리와 장관들 중 어느 누구도 오전엔 대통령을 뵐 수가 없었다. 대통령께 결재를 받으러 찾아온 장관들이 비서실장실에서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비서실장이 제일 먼저 종합보고를 드린 뒤 경호실장이 대통령을 만나던 청와대의 오랜 질서가 깨진 것이다. 김계원 실장은 “차지철 실장이 그렇게 대통령께 말씀드릴 게 있을 만한 사람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얘기를 그렇게나 오래 붙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통령은 참모진 임명도 비서실장이 아닌 차지철과 상의해 결정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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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소사전: 이규광(1925~2012)

육사 3기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 시절 육군 헌병감을 지냈다. 5·16 직전 제5군단 부군단장 시절 하극상 혐의로 구속돼 준장으로 예편했다. 건설부 장관 보좌관으로 일하던 1963년 박임항 건설부 장관 등과 함께 ‘알래스카 토벌작전’으로 불리는 반혁명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삼촌이다. 광업진흥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82년 처제인 장영자 부부의 사기 사건과 관련해 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 대통령이 차지철과 단 둘이 나눈 이야기는 내가 거기에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짐작은 간다. 박 대통령이 차지철에게 정치 쪽에도 개입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차지철에게 “네가 한 번 해봐라. 김재규(중앙정보부장)는 잘 못하지만 너는 되지 않느냐”고 하면 차지철은 “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에 차 대답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무렵 차지철은 박 대통령의 마음에 꼭 드는 언행을 하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