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털 뽑아 배구공 만들었죠” 초도 지키는 그때 그 소년

  • 카드 발행 일시2023.12.26

‘겨울에 걷기 좋은 섬길’ 글 싣는 순서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섬은 12월에도 여전히 푸르다. 겨울에 걷기 좋은 섬길 3곳을 소개한다.

① 한겨울 동백 터널, 통영 우도 둘레길

② ‘웃는 고래’ 상괭이 찾아, 완도 개머리길
③ 절해고도 섬길, 여수 초도 상산봉

초도에 가면
김진수  

가슴에 별이 진 사람 초도로 가라
여수항 뱃길로 48마일
삼산호, 신라호, 덕일호 훼리호,  
순풍호, 데모크라시, 줄리아나 오가고  
뱃길 빨라질수록 발길은 멀어져도
해초처럼 설레는 낭만은 있다

이슬아침 소바탕길로 상산봉에 오르면  
낮고 낮은 햇살에도 퍼덕이는 금비늘
희망은 가슴 터질 듯 수평선에 이르고
달빛 수줍은 갯바랑길을 따라  
은하수 시거리가 이야기꽃 피우는  
초도, 그 풀섬에 가면  
아직도 총총한 별들이 뜬다

지난 19일 전남 여수 초도 상산봉에 오른 김진수 시인. 정상에 그가 쓴 시 '초도에 가면'이 걸려 있다. 김영주 기자

지난 19일 전남 여수 초도 상산봉에 오른 김진수 시인. 정상에 그가 쓴 시 '초도에 가면'이 걸려 있다. 김영주 기자

김진수(64) 시인과 여수 초도(草島) 상산봉(339m)에 올랐다. 섬 가운데 우뚝 솟은 상산봉은 김 시인이 소싯적 소를 몰고 풀 뜯기고, 소풍 가던 길이다. 초도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고등학교 때 여수로 나갔다가 4년 전 다시 초도로 돌아왔다. 지금은 상산봉 아래 가장 큰 마을, 대동리 이장이다. 그와 함께 상산봉에 오른 두어 시간은 시인의 말대로 “어릴 적 품은 꿈을 다시 꾸게 하는 길”이었다.

지난 19일 오전 7시, 전남 고흥군 녹동항에서 평화페리 11호에 몸을 실었다. 여기서 1시간50분을 달리면 여수 초도에 닿는다. 초도로 가는 배편은 녹동과 여수 2곳인데,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뜨는 쾌속선은 7시50분에 출발해 2시간을 가야 한다. 하루 일정으로 다녀올 요량이라 1시간 빠른 배를 탔다. 또 평화페리 2층 객실은 따뜻한 온돌방으로 서울에서 밤새 달려온 여행객이 휴식 같은 시간을 제공했다. 실제로 거의 모든 탑승객이 누워 있었다.

여수 초도 상산봉. 김영주 기자

여수 초도 상산봉. 김영주 기자

길이가 족히 50m는 돼 보이는 페리는 초도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상산봉을 향해 나아갔다. 마침 이날 눈이 내려 초도는 반백(半白)의 섬이 됐고, 상산봉 북쪽은 제법 쌓였다. 여수에서 직선에서 약 70㎞ 떨어진 초도에 이처럼 눈 쌓인 날은 거의 없다고 한다. 운수 좋은 날이다. 초도는 ‘풀섬’이란 뜻이다. 잡목과 잡초가 무성해 붙여진 이름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배가 섬에 닿은 9시쯤, 귀밑머리가 허옇게 센 김진수 시인이 선착장에 나와 있었다. 그는 마을 이장 일을 하면서 초도여객선터미널 매표소에서 발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작은 섬 매표소마다 직원을 두지 못하는 해운사의 사정 때문이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시인이 모는 1t 트럭을 타고 일주도로를 달렸다. 최근 아스팔트로 단장한 섬 둘레길은 7.7㎞. 한나절 정도 걷기에 좋다.
“여수에서 거문도 가기 전에 있는 초도는 때 묻지 않은 섬입니다. 여태 개발의 바람이 타지 않아서죠. 실제로 여긴 민박만 있고 ‘펜션’이나 ‘리조트’는 없어요. 육지에서 2시간 거리, 딱 섬이죠. 요즘 섬은 연도교로 이어진 곳이 많아 섬 같지 않은 곳이 많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초도는 원초적 매력이 있어요. 여름엔 해안가 바위틈에 전복이 보일 정도로 바다가 깨끗하고, 숭어·전어·전갱이 등 철마다 잡히는 고기는 연안 고기하곤 맛이 달라요. 바다가 깊고, 오염이 안 된 덕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