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비덱이 뭔가요?” 잡아뗀 최순실, 난 믿었다 [박근혜 회고록 31]

  • 카드 발행 일시2023.12.12

2016년 10월 24일 오전부터 10월 25일 오전까지의 24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24시간을 기점으로 내 운명의 항로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그 전날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10월 24일 오전 나는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임기 내 개헌’ 추진을 제안했다. 당시에 내가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꺼냈다는 식의 얘기도 나돌았는데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내가 임기 초에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개헌 논의에 반대했던 이유는 자칫 정치권이 개헌 논의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국정과제 추진 동력이 상실될 가능성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개헌 자체가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0월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 연설을 통해 개헌 추진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0월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 연설을 통해 개헌 추진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나는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5년 단임제의 가장 큰 폐해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전 정권의 정책을 폐기하는 탓에 정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여야의 극심한 갈등과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국회 과반이 찬성해도 법안이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국정이 표류하는 현실을 보면서 현행 대통령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임기 후반부라도 야당의 협조를 얻으며 국정 과제를 무사히 완수하고 싶었다. 당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던 창조경제 정책, 북한의 5차 핵실험과 향후 움직임, 일본과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등 대내외적으로 챙겨야 할 과제들이 많았다. 당시 나의 개헌 제안은 오랜 기간의 고민이 반영된 것이었다.

“대통령님, 지금 뉴스 보고 계십니까?” 

그런데 정국은 내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10월 24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나는 경제 관련 업무를 살피다가 물어볼 것이 있어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관이나 수석들로부터 대면 보고도 받지만 그때그때 전화로 현안을 논의하는 것도 나의 업무 방식이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