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이런 나라 몇 있을까”…내가 국정교과서 마음 먹은 순간 [박근혜 회고록 30]

  • 카드 발행 일시2023.12.07

통합진보당 사태의 충격은 내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힘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됐다. 이들이 거리낌없이 친북적 행태를 보이면서도 원내에 진입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근현대사 교육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 것이다. 자유나 다양성을 강조하며 설령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배치되는 주장이 나와도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방치하는 공간이 생기면 반드시 이를 악용하려는 세력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교육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과장하거나 증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고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이에 대한 고민은 이전부터 있었다. 2002년부터 시행된 7차 교육과정에서 중·고교 국사 과목 중 근현대사를 따로 빼내어 국정이 아닌 검인정(檢認定)으로 전환하고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보혁 논쟁이 벌어지면서다. 일부 교과서가 6·25 전쟁을 남침이 아닌 무력충돌로 기술하고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설명하면서 정작 대한민국 건국 세력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기술했다는 반발이 거세게 쏟아졌다. 2011년부터는 한국사 전 과정이 검인증제로 전환됐고, 이는 논란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중국은 동북공정 하는데…교과서 좌편향 논란에 우려

2015년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 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자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국정 교과서 반대 시위를 했다. 중앙포토

2015년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 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자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국정 교과서 반대 시위를 했다. 중앙포토

이를 바라보는 나는 착잡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역사 교과서를 놓고 좌우로 나뉘어 이렇게 오랜 기간 갈등하고 분열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물론 분단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이런 씨앗이 뿌려지는 토양이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라나는 세대들이 역사를 배우는데, 교사와 부모님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또 인터넷에는 또 다른 시각으로 정리가 되어 혼란을 주는 것은 나라의 미래에도 큰 악영향을 끼칠 것이 뻔한데 이를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된 2000년대 초반은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며 우리 역사를 흡수하려는 야욕을 본격화하던 때였다. 일본도 역사 교과서에서 태평양전쟁 때 저지른 범죄를 축소하려는 극우적 목소리가 강해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역사에 대한 관심과 올바른 교육이 필요한 때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사 과목을 고교 입시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꾸고 일부 공무원 임용시험에서도 제외하는가 하면,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역사 교과서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 벌어져 이념 논쟁의 장이 되고 있으니 참 딱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