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탈출 후 50년 지옥 갇혔다…‘섬마을 빨갱이’ 노인의 사연

  • 카드 발행 일시2023.12.06

몇 년 전까지도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었소. 술 먹고 우리 집 앞에 와서 담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거요.

전남 여수의 작은 섬 적금도에 사는 신평옥(87)씨는 50년째 이웃과 왕래를 끊었다. 김종호 기자

전남 여수의 작은 섬 적금도에 사는 신평옥(87)씨는 50년째 이웃과 왕래를 끊었다. 김종호 기자

신평옥(87)씨의 목소리에 울음이 서려 있었다. 단정히 다린 셔츠와 가지런히 빗은 백발이 일그러진 얼굴 주름과 대비됐다. 적절한 단어를 고르려는 듯 여러 번 말을 정정하던 그가 처음으로 단숨에 내뱉은 말이었다.

전남 여수역에서 차를 타고 1시간쯤 달리면 나오는 적금도. 남해를 갈라 섬 사이를 잇는 대교 다섯 개를 넘어야 이르는 외진 곳이다. 신씨가 나고 자란 이 섬엔 50가구 남짓이 살고 있다. 지난 초가을 찾은 적금도에는 울타리나 큰 대문이 없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파도가 없어 호수 같은 청록빛 바다를 따라 걸으면 집집마다 모양이 다른 마당이 훤히 보였다.

대를 이어가며 이곳을 터전 삼은 사람들은 서로를 친척처럼 여긴다고 한다. 신씨의 집안도 5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신씨는 50년 넘게 이웃들과 왕래를 끊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하고는 술 한 잔도 안 마셔요. 집사람이랑 일 끝나고 막걸리나 한 잔씩 하지. 동네 회(모임)는 안 해요.

그는 집 앞마당에 드리워진 살구나무를 한동안 응시했다. 수령이 백 년도 넘었다고 했다. 곁에 있던 부인 마현자(82)씨가 눈물을 훔쳤다. 신씨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그날 이야기를 꺼냈다.

그냥 내 속으로 삭이지. 그날 일은 내가 입을 뻥끗도 안 했소.

나는 무죄입니다


“무죄가 선고됐다.”

간결한 판결 기사 뒤에 가려진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오늘날 수사 단계에선 수많은 보도가 쏟아지지만,
재판 결과와 당사자의 이야기는 비교적 자세히 알려지지 않습니다.

누명을 썼다가 뒤늦게 무죄로 밝혀진 이들의 사연은 더 길고 씁니다.
주변 사람에게도 고통이 스몄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희망을 찾고 삶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사건 속 사람을 만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막과 이들의 인생을 톺아봅니다.

📃 목록

EP1. 멈춰버린 두 친구의 21년…영수증에 새긴 진실
EP2. 작은 섬마을 노인의 눈물…50년 만에 꺼낸 이야기
EP3. 잊을 수 없는 목소리…진범이 풀려났다
EP4. 10년 동안 14번의 재판…귀농 부부에게 생긴 일
EP5. 증거는 그를 가리켰다…조작된 현장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