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그런데 진범이 풀려났다

  • 카드 발행 일시2023.12.13

#프롤로그: 뒤바뀐 범인

경찰은 엉뚱한 이들을 범인으로 체포했고, 검찰은 진범을 풀어줬다. 살인 사건의 유족은 자신 때문에 억울한 이들이 감옥에 갔다며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가진 게 없던 소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옥살이를 했다. 영화 같은 이 이야기는 20여 년 전 벌어졌던 실화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1999년 2월, 목에 칼날을 느낀 성자

 최성자(58)씨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1999년 2월 6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전민규 기자

최성자(58)씨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1999년 2월 6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전민규 기자

1999년 2월 6일 새벽, 성자는 목에 닿은 낯선 차가움에 눈을 떴다. 공포가 엄습하며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서늘한 금속날의 느낌. 어둠 속에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칼이구나.’ 그때 높고 가느다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안 지르면 니 새끼랑 남편은 살려줄게.”

전라북도 완주 시골마을의 작은 수퍼마켓. 강도가 들이닥친 5평쯤 되는 방엔 성자의 가족이 있었다. 성자는 본능적으로 아들을 껴안았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잠에서 깨서 울기라도 한다면…. 그는 아들을 토닥이며 기도했다. ‘제발 깨지 마. 제발 계속 자.’

“돈은 금고에, 패물은 아기 메밀베개 속에 있어요.” 성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방을 뒤지는 소리가 두 곳에서 동시에 났다. 이어서 건넌방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세 명이구나.’ 이어 제발 들리지 않길 바랐던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건넌방에서 자고 있던 시고모 애순의 목소리였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들이쳤다. 그들이 갔다.

침입자 세 명이 앗아간 건 현금 45만원과 목걸이, 반지, 팔찌, 그리고 시고모 애순의 목숨이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잠을 깬 애순이 소리를 지르자 죽인 것이었다. 애순의 입엔 테이프가 붙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숨을 쉬지 못해 숨을 거둔 것이었다. 얼마 뒤 성자는 뺏긴 줄 알았던 돈 중 30만원을 남편의 옷 주머니에서 찾았다. 하지만 시고모의 죽음 앞에서 돈 30만원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죽음과 그후로도 사라지지 않는 공포 속에서 그는 경찰에 30만원을 알릴 만큼 마음이 진정된 게 아니었다. 경찰도 별 말이 없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전북 완주읍 나라슈퍼 앞의 모습.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는 당시 5세였던 최성자씨의 아들이다. 사진 최성자씨

사건이 발생했던 전북 완주읍 나라슈퍼 앞의 모습.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는 당시 5세였던 최성자씨의 아들이다. 사진 최성자씨

이날 이후의 성자의 삶은 각오한 것보다 더 잔인했다. 성자는 얼마 뒤 아기를 사산했다. 심각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성자에게 그나마 위로가 된 건, 범인 세 명이 잡혔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같은 동네에 살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세 남자를 체포했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좋은 일도 아닌데 굳이 이들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했다. 성자는 이렇게 위안했다. ‘그들은 벌을 받을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일상을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했던 일상은 얼마 뒤 산산이 조각났다.

나는 무죄입니다

“무죄가 선고됐다.”

간결한 판결 기사 뒤에 가려진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오늘날 수사 단계에선 수많은 보도가 쏟아지지만,
재판 결과와 당사자의 이야기는 비교적 자세히 알려지지 않습니다.

누명을 썼다가 뒤늦게 무죄로 밝혀진 이들의 사연은 더 길고 씁니다.
주변 사람에게도 고통이 스몄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희망을 찾고 삶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사건 속 사람을 만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막과 이들의 인생을 톺아봅니다.

📃 목록

EP1. 멈춰버린 두 친구의 21년…영수증에 새긴 진실
EP2. 작은 섬마을 노인의 눈물…50년 만에 꺼낸 이야기
EP3. 잊을 수 없는 목소리…진범이 풀려났다
EP4. 10년 동안 14번의 재판…귀농 부부에게 생긴 일
EP5. 증거는 그를 가리켰다…조작된 현장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