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아마존' 비명…해초 3분의 1 사라지자, 재앙이 시작됐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바다의 아마존' 비명…해초 3분의 1 사라지자, 재앙이 시작됐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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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서호주 샤크베이 해초대의 모습.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하늘에서 본 서호주 샤크베이 해초대의 모습.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붉은 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⑦바다 아마존의 비극

바다에도 아마존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7000㎞가량 떨어진 호주 서부의 샤크베이(Shark Bay)다. 서울의 6.6배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의 해초대(Seagrass meadow)가 해저를 뒤덮고 있는 곳이다. 호주 동부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와 함께 세계 최대 탄소흡수원 중 하나로 꼽힌다.

서호주 최대 도시인 퍼스(Perth)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10시간쯤 달리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샤크베이에 도착했다는 안내문이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로 알려진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군락.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로 알려진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군락.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근처 해변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로 알려진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군락이 바다에 솟아 있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시아노박테리아의 광합성 작용으로 형성된 화석이다. 수십억 년 전, 지구에 가장 처음 산소를 공급해 줬다고 한다.

세계서 가장 큰 식물…한 씨앗서 서울 3분의 1로 퍼져

하늘에서 본 서호주 샤크베이 해초대의 모습.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하늘에서 본 서호주 샤크베이 해초대의 모습.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해안선을 따라 샤크베이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끝없이 펼쳐진 얕은 바다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해초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초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리본 해초로 불리는 ‘포시도니아 오스트랄리스'(Posidonia australis)’가 햇빛을 받아 아름다운 빛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360도 카메라로 본 호주 샤크베이 해초대의 모습. 사진 스튜디오 VSS

360도 카메라로 본 호주 샤크베이 해초대의 모습. 사진 스튜디오 VSS

지난해 서호주대 연구팀은 샤크베이에서 자라는 이 해초가 하나의 유전자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큰 식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해초는 하나의 씨앗에서 파생돼 4500년 동안 퍼졌으며 길이는 180㎞, 면적은 서울의 3분의 1에 이른다. 논문의 공동 저자인 엘리자베스 싱클레어 서호주대 진화생물학 박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해초 샘플을 채취했는데 놀랍게도 유전자들이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인간의 활동이 많지 않은 넓고 탁 트인 지형에서 오랜 기간 계속해서 크게 자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샤크베이에는 리본 해초를 포함해 12종의 다양한 해초가 자생한다. 1500여 종 해양 생물들의 안식처가 된다. 또, 광합성을 하는 과정에서 물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물고기가 숨을 쉴 수 있는 산소로 바꾸고, 탄소를 뿌리와 퇴적층 등에 저장한다. 샤크베이는 과거에도, 지금도 지구의 ‘푸른 폐’이자 탄소저장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수온에 바다 검게 변해…석탄발전소 2기 이산화탄소 방출

호주 샤크베이 해초대의 모습. 사진 스튜디오 VSS

호주 샤크베이 해초대의 모습. 사진 스튜디오 VSS

하지만, 샤크베이도 기후변화의 위협을 피하지 못했다. 비극이 시작된 건 2010~2011년 여름이었다. 남반구에 있는 호주의 계절은 한국과 반대다. 당시 바다의 폭염으로 불리는 ‘해양열파(Marine Heatwave)’가 서호주 일대 해역을 덮쳤고, 평년보다 3~4도 높은 수온이 두 달 동안 이어졌다. 샤크베이에서 관광 크루즈를 운영하는 제이드 스탠든 리즐리는 끔찍했던 당시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크루즈를 운영하는 제이드 스탠든 리즐리.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크루즈를 운영하는 제이드 스탠든 리즐리.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30도에 이르는 고수온이 너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조류가 발생해 바다를 검게 만들었어요. 해초가 자라려면 햇빛이 필요한데 불행하게도 바닷물이 시꺼멓게 변해버렸고, 그 검은 조류는 샤크베이의 해초를 파괴해 버렸죠.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2011년 해양열파로 인해 죽은 해초의 모습. 사진 싱클레어 박사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2011년 해양열파로 인해 죽은 해초의 모습. 사진 싱클레어 박사

위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해양열파의 영향으로 샤크베이 해초의 3분의 1이 사라지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해초가 저장하고 있던 900만t(톤)에 이르는 탄소가 방출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석탄발전소 2기 또는 80만 가구가 연간 방출하는 이산화탄소와 맞먹는 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초의 소멸이 해양생물에게 미친 영향

해양열파 전후 샤크베이 해초대 면적 변화. 해양열파 이후 해초가 자라던 넓은 해역이 모래만 남은 곳으로 변했다. 자료 호주 생물다양성보존관광부(DBCA)

해양열파 전후 샤크베이 해초대 면적 변화. 해양열파 이후 해초가 자라던 넓은 해역이 모래만 남은 곳으로 변했다. 자료 호주 생물다양성보존관광부(DBCA)

생태계의 기초가 되는 해초의 소멸은 샤크베이의 해양 생물들에게는 재앙과 마찬가지였다. 싱클레어 박사는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효율적으로 호흡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속의 산소가 줄어든다”며 “해양 생물들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충분한 산소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서호주 샤크베이는 듀공의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사진 그린피스

서호주 샤크베이는 듀공의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사진 그린피스

해양열파 이후 샤크베이의 생태계를 모니터링한 연구에 따르면, 듀공은 해초가 사라진 이후 67.5%가 감소했고, 수척해진 푸른바다거북들이 반복적으로 발견됐다. 바다뱀은 76.7%가 줄면서 가장 큰 타격 입었다. 바다뱀에게 해초대는 먹이를 찾는 사냥터이자 자신을 보호하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생태계의 연쇄 붕괴는 가장 사회적인 해양 생물인 돌고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샤크베이에서 돌고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이먼 알렌 서호주대 해양생물학과 교수는 “해양열파는 해초대에 재앙이었고, 해초대는 해양 시스템의 기초이기 때문에 물고기와 바다거북, 듀공, 그리고 돌고래에 이르기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돌고래 개체군에서 태어나는 새끼의 수가 즉각적으로 감소하고 생존율도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관광객 대신 모래주머니 300개 실은 이유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해초 복원을 위해 모래주머니를 바다에 넣고 있다.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해초 복원을 위해 모래주머니를 바다에 넣고 있다.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10년이 지난 지금도 샤크베이의 해초와 해양 생태계는 치유의 과정에 있다. 많은 과학자와 주민들이 해초를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진행해 왔다. 취재팀이 방문한 지난 8월 3일, 크루즈 관광업을 하는 리즐리 가족은 배에 관광객 대신 300개의 모래주머니를 가득 실었다. 그리고는 바다 위를 항해하면서 해초가 사라진 곳에 모래주머니를 가라앉혔다.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해초 복원을 위해 투하한 모래주머니에 해초가 안착한 모습. 사진 스튜디오 VSS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해초 복원을 위해 투하한 모래주머니에 해초가 안착한 모습. 사진 스튜디오 VSS

크루즈선의 선장인 제이드 리즐리는 “해초의 끝이 마치 발톱처럼 생겼는데 황량한 곳이라면 그냥 떠다니다가 버려져 해안가로 씻겨 내려갈 것이다. 모래주머니가 있으면 거기에 달라붙어 뿌리내릴 수 있고, 실제로 해초가 자라기 시작한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제이드의 아버지인 그렉 리즐리도 “과거에는 배를 타고 나가면 듀공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지만, 이제는 듀공 한 마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며 “엘니뇨의 영향으로 다가오는 여름에 또다시 강한 해양열파가 찾아와서 남은 해초가 사라질까 두렵다”고 했다.

“바다가 수천 년간 우릴 지탱…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서호주 샤크베이의 말가나 원주민 원로인 파트리샤 오클리.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서호주 샤크베이의 말가나 원주민 원로인 파트리샤 오클리. 사진 신예민 프리랜서 촬영감독

정부의 지원 없이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말가나 원주민들도 힘을 보탰다. 오래전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이들은 지금도 해삼을 채취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등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간다. 말가나 원주민 원로인 파트리샤 오클리는 “우리는 바다 민족이고 수천 년 동안 바다가 우리를 지탱해왔다”며“앞으로 다가올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말가나 원주민들이 수중 조사를 통해 만든 해양 생태계 그림. 사진 싱클레어 박사

서호주 샤크베이에서 말가나 원주민들이 수중 조사를 통해 만든 해양 생태계 그림. 사진 싱클레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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