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 가도 오징어 없어요"…열병 걸린 동해가 비어간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먼 바다 가도 오징어 없어요"…열병 걸린 동해가 비어간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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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탄소저장고이자 달궈진 지구의 열을 흡수하는 냉장고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올해 전 세계 바다는 전례 없이 뜨거워지면서 그 기능이 무너지고 있다. 가속화되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해양 생태계가 붕괴되고 바다는 고유의 탄소저장 능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창간 58주년을 맞아 동해부터 대서양·인도양·북극해까지 기후변화가 전 세계 해양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하고 지구의 푸른 폐, 바다 환경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특별취재팀=천권필·정은혜·이가람 기자

 울릉도 수중 탐사에 나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과 취재기자. 박성진

울릉도 수중 탐사에 나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과 취재기자. 박성진

[붉은 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①동해가 끓는다 

바다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져요. 먼바다로 나가봐도 오징어가 없어요.

울릉도에서 42년째 오징어를 잡은 김해수(65) 씨는 올해처럼 오징어를 구경도 못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지난달 15일 울릉도의 항구에서 만난 그는 “어제는 한 다섯 마리 잡았고, 오늘은 뭐 아예 구경도 못 하고 들어왔죠”라고 말했다.

늙은 어부는 바다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30도에 이르는 높은 수온이 이어지면서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지점에서 주로 서식하는 오징어 떼를 내몰고 있었다. 하루 뒤 시작되는 울릉도 오징어 축제에 필요한 오징어도 동해 먼바다에서 잡힌 것을 사온다고 했다. 김 씨는 “5~6년 전부터 오징어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배운 건 이거밖에 없는데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망망하다”고 말했다.

울릉도에서 42년째 오징어를 잡은 김해수씨. VSS

울릉도에서 42년째 오징어를 잡은 김해수씨. VSS

‘바다의 폭염’ 해양열파, 동해서 관측 이래 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수년 전부터 울릉도 오징어가 줄어드는 건 동해가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기후변화와 엘니뇨 발달 등으로 전 지구 해수면 온도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은 상태다. 그중에서도 동해는 수온이 이례적으로 높은 핫스팟 해역으로 꼽힌다. 중앙일보가 김일남 인천대 해양학과 교수팀에 의뢰해 미국 해양대기청(NOAA) 위성의 동해 수온 데이터(1982~2023년)를 분석한 결과, 올여름 ‘해양열파(Marine Heatwave)’ 현상이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열파는 평년의 상위 10%에 해당하는 고수온이 지속하는 현상으로 ‘바다의 폭염’을 의미한다. 세계 곳곳에서 극한 고수온 현상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서 2010년대에 국제 학계가 만든 새로운 기준이다.

김 교수팀에 따르면, 올여름 동해 곳곳에서 해양열파가 발생한 일수의 평균은 54.1일이었다. 관측 첫해인 1982년엔 1.6일에 불과했다. 해양열파 발생일수는 10년 전엔 연간 50일 안팎에서 지난해엔 129일을 기록했고, 올해는 여름에만 54일로 는 것이다. 그만큼 동해가 무서운 속도로 달궈지고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동해는 북쪽의 차가운 물과 남쪽의 따뜻한 물의 경계가 이뤄지는 곳”이라며 “온난화로 인해서 더 데워진 남쪽의 따뜻한 물이 강하게 유입되면서 해양열파의 증가 현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대 해조류 줄고 열대어 출현…40년 어민도 “처음 본다”

울릉도 전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 전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가속화되는 온난화가 동해와 울릉도를 바꿔놓고 있다. 울릉도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바다의 전선에 있어서 한국의 갈라파고스 섬으로 불릴 정도로 종다양성이 풍부한 곳이다. 하지만, 그만큼 기후변화에 민감한 곳이기도 하다.
취재팀은 지난달 13일 기후변화 수중 조사에 나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을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바다 수온은 29도. 물 속인 데도 더위가 느껴졌다. 수심 18m까지 내려갔지만, 수온은 26도였고 파랑돔 등 아열대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울릉도 바닷속에서 점차 서식 권역을 넓히고 있는 아열대 식물인 옥덩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 바닷속에서 점차 서식 권역을 넓히고 있는 아열대 식물인 옥덩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일본에서 우미부도(바다 포도)로 불리는 옥덩굴이 해저를 가득 메웠다. 민원기 한국해양과기술원 박사는 “온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대황과 감태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옥덩굴같이 아열대성을 선호하는 해조류들로 바뀌는 추세”라며 “최근에는 울릉도·독도에서 지금까지 기록된 적이 없는 아열대성 어종이 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열대어종 큰뿔표문쥐치. 주민 제공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열대어종 큰뿔표문쥐치. 주민 제공

실제로 최근 열대 바다에 사는 큰뿔표문쥐치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어민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어민 정유관(64) 씨는 “조업을 하는데 시꺼멓고 생전 처음 본 고기가 올라왔다. 수온이 높아지다 보니 남쪽에서 온 거 같은데, 40년 넘게 배를 몬 선장도 이런 고기는 처음 봤다며 놀랬다”고 했다.

사라지거나 작아진 오징어…“올해 어획량 작년 8분의 1”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울릉도 바다 전선의 균형이 깨지면서 어민들의 최대 수입원이었던 오징어 어획량은 30년 전보다 93%가 줄었다. 1만 4000t(톤)의 어획량은 지난해 978t에 그쳤고, 올해 어획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8분의 1 수준이다. 이주원 울릉수협 주임은 “오징어가 잡히는 양도 적고 잡힌 오징어도 작년보다 크기가 작다 보니 실제 판매액은 작년 같은 기간의 10% 수준”이라고 말했다.

울릉도 어획량 감소로 인해 저동항 어판장의 수조가 텅 비어 있다. 천권필 기자

울릉도 어획량 감소로 인해 저동항 어판장의 수조가 텅 비어 있다. 천권필 기자

김윤배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기지대장은 “오징어 어장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해역에서 적정한 수온이 형성되고 수온보다 더 중요한 먹이망이 형성된다”며 “남쪽에서 난류 세력들이 굉장히 강하게 유입되면서 울릉도·독도 주변에 극한 고수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접경 지역이 과거 울릉도 주변에서 동해 북쪽까지 확장되면서 어장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수면 상승·극한 기상 등 울릉도·독도 위협

울릉도 사동항 인근 방파제에 3년 전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피해가 남아 있다. 천권필 기자

울릉도 사동항 인근 방파제에 3년 전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피해가 남아 있다. 천권필 기자

해양열파의 위협은 이뿐만이 아니다. 열을 흡수한 바닷물은 팽창하면서 해수면 상승 속도를 높인다. 최근 30년 동안 울릉도·독도의 해수면은 해마다 6.17㎜씩 올랐는데, 이는 전체 평균(서·남·동해)보다 두 배 정도 빠른 추세다. 따뜻해진 바닷물이 더 많은 수증기와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태풍과 집중호우 등 극한 기상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사동항에는 3년 전 태풍 마이삭으로 인해 19.5m라는 관측 이래 최대 파고가 덮치면서 무너진 방파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김 대장은 “바다 생태계도 임계점을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붕괴가 시작되는데 해양열파는 그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신호”라며 “태풍 같은 극한 기상에 따른 재난도 섬과 연안 지방을 중심으로 굉장히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작아지는 식물플랑크톤…동해 생산력 38% 하락

동해에서 식물플랑크톤 채집 중인 국립수산과학원 연구팀. 국립수산과학

동해에서 식물플랑크톤 채집 중인 국립수산과학원 연구팀. 국립수산과학

해양열파는 바다의 순환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따뜻해진 표층과 차가운 심해 간에 온도차가 커지면서 물이 섞이지 않는 성층 현상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바다 먹이사슬의 기초이자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소저장고 역할을 하는 식물플랑크톤에게는 치명적이다. 성층이 강해지면 심해로부터 식물플랑크톤의 먹이인 영양염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동해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는 초미소 식물플랑크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는 초미소 식물플랑크톤. 국립수산과학원

실제로 국립수산과학원 연구팀이 최근 3년간(2018~2020년) 동해에서 식물플랑크톤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식물플랑크톤의 크기가 과거보다 소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현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은 “식물플랑크톤은 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해야 하므로 표층에 있어야 하고, 먹이가 되는 저층의 영양염이 올라와야 한다”며 “(저층에서 올라오는) 영양염 공급이 줄면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는 초미세 식물플랑크톤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양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인 식물플랑크톤의 소형화는 먹이사슬에 따라 동물플랑크톤과 어류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바다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동해의 기초생산력은 20~30년 전보다 38%가량 하락했다. 김 교수는 “기후변화가 이대로 가속화되면 동해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플랑크톤이나 영양염이 적어지면서 마치 적도 지방의 열대 바다처럼 동해가 비어가고, 더 투명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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