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조 쏟은 바다숲 인공어초…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무덤 됐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1.6조 쏟은 바다숲 인공어초…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무덤 됐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강원 양양군 조도 해양보호구역에 설치된 바다숲이 방치되면서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을 취재기자가 보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강원 양양군 조도 해양보호구역에 설치된 바다숲이 방치되면서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을 취재기자가 보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붉은 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②바다숲의 불편한 진실 

10일 서핑의 성지로 불리는 강원도 양양 기사문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조도(鳥島) 주변의 바다는 강원도 내 유일한 해양보호구역이다. 탄소흡수원인 해초, 즉 잘피(왕거머리말)의 군락지다. 2011년에 대규모 바다숲이 조성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뜨거워진 바다를 구하기 위한 바다숲은 인간들의 공허한 기대일 뿐이었다.

해양보호구역의 생태계를 수중 모니터링하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 다이버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수심 20m쯤 들어갔을까. 뿌연 시야 속에서 네모난 형태의 인공 구조물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2년 전에 바다숲을 만들겠다며 가라앉힌 인공어초들이었다. 어초를 감쌌던 해조류들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구조물들만 덩그러니 해저에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인공어초에 걸린 폐그물을 비롯해 각종 쓰레기가 가득했다. 해조류를 매달았던 밧줄들도 뒤엉킨 채로 흉물처럼 방치돼 있었다. 이곳은 바다숲이라기 보다는 콘크리트 무덤에 가까웠다.

53년간 바다에 가라앉힌 148만 개 콘크리트…서울 4.4배

강원 양양군 조도 해양보호구역에 설치된 바다숲이 방치되면서 쓰레기가 쌓여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강원 양양군 조도 해양보호구역에 설치된 바다숲이 방치되면서 쓰레기가 쌓여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148만 3544개. 1971년부터 지금까지 해양 생태계를 살리겠다면서 바닷속에 가라앉힌 인공어초 수다. 면적은 서울의 4.4배에 이른다. 이렇게 대규모로 한반도 연안에 조성된 바다숲의 상당수가 부실한 사후 관리로 인해 방치되거나 해양 생태계를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수산부가 국회 농해수위 윤미향 의원실에 제출한 ‘인공어초 및 바다숲 사업 현황’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는 1971년부터 올해까지 총 1조 5889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동해·서해·남해와 제주 연안에 인공어초를 설치하고 바다숲을 조성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인공어초 사업은 어류나 패류 등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생물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1971년부터 시작됐다. 이후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바다 사막화, 즉 갯녹음 현상이 전국 해안가를 중심으로 가속화됐다. 이를 계기로 인공어초 사업은 2009년부터 갯녹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해조류 등을 이식하는 바다숲 사업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바다숲 조성을 통해 해양 탄소흡수원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블루카본(Blue Carbon) 사업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거문도 해역에 설치된 인공어초가 쓰레기와 모래에 파묻혀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거문도 해역에 설치된 인공어초가 쓰레기와 모래에 파묻혀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문제는 바다숲 사업이 수면 아래서 이뤄지다 보니 육상에서 나무를 심는 것과 달리 모니터링이나 사후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시모가 동해와 남해 일대의 해상국립공원·해양보호구역 등에 설치된 바다숲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부실한 사후 관리로 인해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아 있는 등 바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인철 국시모 사무국장은 “거문도 등 도서 지역에는 근해어업이 많이 이뤄지다 보니 폐그물이 인공어초에 걸려서 침적된 양이 많았고, 인공어초가 모래에 파묻힌 곳도 있었다”며 “보호구역에 조성된 바다숲들이 이 정도로 관리가 안 됐다면 다른 해역에 설치된 바다숲의 상태는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어초 210개 가라앉혔지만…해조류 사라져

강원 양양군 조도 해양보호구역에 설치된 바다숲이 방치되면서 쓰레기가 쌓여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강원 양양군 조도 해양보호구역에 설치된 바다숲이 방치되면서 쓰레기가 쌓여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해수부 산하 한국수산자원공단이 지난해 사업이 완료된 바다숲 121곳을 실태 조사한 결과에서도 50곳(41.3%)은 사후 관리가 안돼 바다숲 조성 효과가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도 해양보호구역에 설치된 바다숲 사업도 그중 하나다. 정부는 2011년 조도 인근 해역에 7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해 반톱니형·아치형 등 다양한 형태의 인공어초 210개를 가라앉혔고, 4814m에 이르는 해조류를 이식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사업 이후에는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지난해 모니터링을 해보니 인공어초에 붙어 있던 해조류들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강원 양양군 조도 해양보호구역에 설치된 바다숲. 2014년에 인공어초에 붙어 있던 해조류가 지난해 모니터링 결과 대부분 사라졌다. 해양수산부

강원 양양군 조도 해양보호구역에 설치된 바다숲. 2014년에 인공어초에 붙어 있던 해조류가 지난해 모니터링 결과 대부분 사라졌다. 해양수산부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매년 17~20개의 신규 사후 관리지가 발생하는 등 바다숲 사후 관리지의 누진적 증가와 한정된 지자체 예산으로 인해 사후 관리가 안 되는 곳이 발생하고 있다”며 “민간기업의 바다숲 사후관리 참여를 유도해 지방비 부담을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바다숲 사업은 조성이 완료되면 지자체로 이관해 사후 관리를 맡긴다.

정 국장은 “구조물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지 않거나 성게 등 해조류를 먹고 사는 조식 동물을 관리하지 않으면 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이미 140만 개 이상의 콘크리트가 바다에 투입된 상황에서 최소 10년 이상 바다숲의 효과에 대한 성과를 장기적으로 분석하고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산화탄소 빠르게 흡수…“바다 부담 최소화해야”

울릉도 바닷속 바다숲의 모습. 박성진

울릉도 바닷속 바다숲의 모습. 박성진

바다숲은 열대우림보다 이산화탄소를 50배 빠르게 흡수하는 등 중요한 탄소 흡수원의 역할을 한다. 최근 들어 갯녹음 현상이 다시 가속화되면서 바다숲 조성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김형근 강릉원주대 해양생태환경학과 명예교수는 “바다 환경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면적을 넓히는 것보다는 기술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실감형 디지털스페셜 ‘붉은 바다 속으로’에 접속해보세요! 위 이미지를 클릭하거나, 링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주소창에 링크(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483)를 붙여넣어 주세요.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