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사태 또 발생한다면? “먹튀” 비판만 하다 놓친 것 ⑰

  • 카드 발행 일시2023.08.29

“금융위원회는 주당 300원을 깎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을 겁니다.”
“그런 얘기를 금융위가 직접 밝혔나요?”
“아니요. 간접적으로 들은 것도 같고, 제 느낌입니다.”

2011년 3월 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당시 하나은행 부행장 김병호(전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와 론스타의 2인자 앨리스 쇼트가 마주 앉았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대법원 유죄 취지 파기환송(3월 10일)과 관련해 대책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김병호의 ‘느낌’을 통해 매각 가격을 깎고자 하던 금융위의 의중이 전달된다.

반년 뒤 영국 런던. 양측 수장들의 은밀한 대화 속에서 가격 인하 문제는 더욱 구체화한다.

“가격을 인하한다면 금융위원회가 거래를 승인할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하겠습니까?” (론스타 회장 존 그레이켄)
“금액에 합의하면 하루이틀 내에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당시 하나금융 회장 김승유)
“그러니까 금융위와 가격 삭감에 대해 논의한 거죠?” (그레이켄)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느낌이 있습니다. 저는 금융위와 여러 차례 대화했습니다.” (김승유)

2011년 12월 4일 외환은행 인수 기자회견장에서 당시 하나금융그룹 회장 김승유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 직전 열린 런던 회동에서 가격 인하에 합의한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판 뒤 한국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중앙포토

2011년 12월 4일 외환은행 인수 기자회견장에서 당시 하나금융그룹 회장 김승유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 직전 열린 런던 회동에서 가격 인하에 합의한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판 뒤 한국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중앙포토

론스타는 이 대화를 몰래 녹음하고 있었다. 그걸 간파한 듯 하나금융 고위층은 끝까지 금융위의 ‘가격 인하 지시’에 대한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론스타에도 ‘느낌’을 공유할 정도의 인지 능력은 있었다.

론스타는 결국 매각가를 5000억원 정도 깎은 뒤에야 금융위의 승인을 얻어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금융위의 승인 지연 때문에 매각이 5년 이상 늦어져 피해가 컸고, 부당하게 5000억원을 깎아야 했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을 제기했다.

금융위는 왜 론스타의 발목을 붙잡았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2011년 10월 28일 김승유가 그레이켄에 보낸 e메일에 금융위 ‘관망’ 정책의 배경이 녹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