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전 깜빡이 켜고 좌회전…마윈 몰락시킨 시진핑 가면

  • 카드 발행 일시2023.08.09

제3부: 시진핑의 중국 어디로 가나

제2장: 우회전 깜박이 켜고 좌회전하는 시진핑… 몰락하는 민영경제

2012년 12월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성 선전을 방문해 덩샤오핑의 동상에 헌화하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은 집권 이후 민영기업보다는 국유기업 우선 정책을 펴 “우회전 깜박이 켜고 좌회전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2012년 12월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성 선전을 방문해 덩샤오핑의 동상에 헌화하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은 집권 이후 민영기업보다는 국유기업 우선 정책을 펴 “우회전 깜박이 켜고 좌회전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을 가리켜 많이 쓰는 말이다. 사회주의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행동은 자본주의의 시장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반기를 드는 이가 생기자 덩은 “토 달지 말고 2년만 해보자”는 이른바 “논쟁하지 말라”는 부쟁론(不爭論)으로 입을 막았다. 2년이 지나니 반대하는 이가 거의 없어졌다. 효과가 좋았던 것이다.

두 해만 해보자던 개혁개방은 덩샤오핑 사후에도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로 이어지며 40여 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이 엄청 몸집을 불렸음은 물론이다. 한데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엔 다른 말이 나온다.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지난 3월 “민영기업은 우리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 기업가 마윈(馬云)을 몰락시켜 해외를 떠도는 존재로 만들었다.

‘국진민퇴’ 구호 속 민영기업 퇴조 넘어 소멸? 

말과 행동이 다르다. 중국을 알기 어렵고 시진핑의 속내를 가늠하기 힘든 이유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 경제는 ‘국진민퇴(國進民退)’란 말을 듣는다. 국유기업이 약진하고 민영기업은 퇴조한다는 뜻이다. 시진핑은 줄곧 민영기업 보호를 말하지만, 실제 중국 경제가 돌아가는 걸 보면 민영기업은 ‘퇴조’가 아니라 중국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소멸’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중국 일자리의 80% 이상을 담당한다는 민영기업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민영기업 약세는 시진핑의 집정 사유(思惟)와 무관치 않다. 시진핑은 집권한 지 얼마 안 된 2013년 ‘전국조직공작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간부의 평가방법 변화를 알렸다. 앞으론 GDP 증가율로 누가 영웅인가를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중국 각 성장(省長)들의 업적을 그 성(省)의 GDP가 얼마나 증가했는가 여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마오쩌둥 시대는 ‘계급투쟁’이 최우선이었다. 사진은 1970년대 중국 선전 포스터. 사진 소후망

마오쩌둥 시대는 ‘계급투쟁’이 최우선이었다. 사진은 1970년대 중국 선전 포스터. 사진 소후망

시진핑은 대신 새로운 평가 지표로 민생 개선과 사회 발전, 환경 보호 등을 제시했다. 처음엔 신선하게 여겨졌다. 중국이 GDP 지상주의에 빠진 결과 환경 파괴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성장 일변도로 달려 이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해석이다. 시진핑의 평가방법 변화가 진정으로 말하는 건 앞으론 ‘경제’가 아니라 ‘정치’가 으뜸이라는 거다.

시진핑 시대는 ‘경제 건설’ 대신 ‘정치 정확’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는 ‘계급투쟁’이 우선이었지만, 덩샤오핑은 ‘경제 건설’을 중심으로 했다. 이제 시진핑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정치 정확’이다. 덩샤오핑은 경제 발전을 위해 1) 생산력 발전에 유리한가, 2) 종합국력 증강에 유리한가, 3) 인민의 생활수준 제고에 유리한가 등 ‘세 가지에 유리한가(三個有利于)’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를 앞세우는 시진핑 시대엔 우선 고려사항이 다르다.

시진핑 정부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경제에 이로울까 불리할까, 또는 경제가 성장할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을 지킬 수 있느냐 또는 장기집권을 꾀하는 시진핑에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당과 국가의 돈주머니 역할을 하는 국유기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금고처럼 수시로 써먹을 수 있는 국유기업에 돈과 지원을 몰아주는 이유다.

2018년 9월 속칭 금융전문가 우샤오핑이 “사영경제는 무대를 떠나라”는 글을 발표해 중국 사회에 충격을 안긴다. 웨이보 캡처

2018년 9월 속칭 금융전문가 우샤오핑이 “사영경제는 무대를 떠나라”는 글을 발표해 중국 사회에 충격을 안긴다. 웨이보 캡처

자원이 국유기업으로 쏠리니 민영기업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시진핑은 알리바바와 같은 거대 민영기업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본다. 중국에서 성공한 민영기업 대부분의 배후엔 정치적인 세력이 있는데 민영기업이 언제 비약적으로 발전했나. 바로 장쩌민 시기부터다. 장쩌민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의 상하이방(上海幇) 권력을 등에 업고 자본의 야만적인 성장을 추구하니 부패가 만연하고 빈부격차는 커졌다는 게 시진핑의 인식이다.

마윈 자신이 중국 정부와는 “연애만 하고 결혼은 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민영기업은 권력과 무관치 않다. 이 같은 중국의 민영기업에 본격적인 경보가 울리기 시작한 건 시진핑이 헌법을 수정해 장기집권 가도를 연 2018년부터다. 그해 1월 저우신청(周新城) 중국인민대학 교수가 당 이론 선전물인 ‘구시망(求是網)’에 “사유제 소멸”을 주장하는 글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