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은 왜 ‘자해’ 택했나…스스로 몸값 깎은 ‘이상한 협상’ ⑭

  • 카드 발행 일시2023.08.01

그렇다면 ‘등’(等)으로 해도 되지 않겠어요?

‘등’으로 하면 삼라만상이 다 걸리는데?

2003년 7월 15일 이른 아침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회의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변양호의 제안에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 김석동(전 금융위원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배석한 두 기관의 실무진과 청와대 행정관 주형환(전 산업부 장관), 행장 이강원을 비롯한 외환은행의 핵심 관계자들, 외환은행의 재무자문사 모건스탠리와 법률자문사 세종의 인력들도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들이 식전 댓바람부터 집결한 건 론스타 때문이었다. 외환은행 가격 협상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그때까지 론스타는 인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12회 참조). 그저 “은행법 시행령에 예외적 인수 허용 요건으로 규정된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봐 달라”고 떼쓸 뿐이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안들이 모두 테이블 위에 올랐지만 하나같이 명쾌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예외승인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론스타 측으로부터 예외승인 요청을 계속 받아왔던 변양호가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복잡하게 다른 길로 갈 필요가 뭐 있겠어요? 예외승인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합시다.”

변양호의 고교·대학 1년 선배였던 김석동은 난색을 표했지만 그에게도 대안은 없었다. 그렇다고 예외승인 안을 무턱대고 받을 수도 없었다. 금감위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여부를 최종 심사해야 할 기관이었다.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고민하던 김석동이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재경부가 예외승인 안을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한다면 공식적으로 금감위에 승인 요청 공문을 발송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