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사단’ 모태 된 사진 1장…그들에 얽힌 2003년 이야기 ②

  • 카드 발행 일시2022.11.29

2회. 윤석열 사단의 모태가 된 대선자금 수사팀 

여기 중앙일보가 단독으로 입수한 사진이 한 장 있다. 검사 17명과 수사관 2명이 2008년 6월 14일 충남 논산시 상월면과 계룡시 엄사면에 걸쳐 있는 향적산 국사봉에 올라 찍은 기념사진이다. 이들은 2003~2004년 9개월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의 친목 모임인 ‘우검회’(우직한 검사들의 모임) 멤버들이다.

윤석열 검사가 논산지청장(2008년 3월~2009년 1월)으로 재직할 때 모여 산행을 한 뒤 식사를 하며 친목을 다졌다. 우검회 회원 28명(검사 23명, 수사관 5명) 중 이원석 등 9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좌장인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2003년 당시 직책, 대법관 역임)을 필두로 문효남 수사기획관, 남기춘 중수1과장, 유재만 중수2과장, 김수남 중수3과장(검찰총장 역임)이 보인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특수통 검사들이 한자리에 마법처럼 응축돼 있다. 당시 어느 누구도 우검회의 중간 보스격인 윤석열과 막내 동기인 한동훈·이원석이 14년 뒤 각각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직을 꿰차며 스스로 ‘살아있는 권력’이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다만 향나무가 많은 향적산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에 도읍을 정할 때 친히 올라가 국사를 논한 곳이라는 국사봉은 짐작했을지 모른다.

우검회는 한 해 전에는 문효남 대구지검장(2007년 2월~2008년 3월)의 근무지 근처인 대구 팔공산을 등반했다.

 2008년 6월 향적산 국사봉 등반 기념 사진. 대선자금 수사 끝나고 4년여뒤 윤석열 당시 논산지청장 관할 지역을 찾았다. 앞줄 왼쪽부터 윤석열(대통령), 윤시균(수사관), 신호철, 한동훈(현 법무부 장관), 유일준, 이원곤 검사. 가운데 왼쪽부터 유재만(중수2과장), 김수남(중수3과장), 남기춘(중수1과장), 안대희(중수부장), 문효남(수사기획관), 이완규(현 법제처장), 신원 미상. 맨뒷줄 왼쪽부터 조재연 검사, 김종복(수사관), 조은석, 이명순, 김헌범, 정준길 검사. 사진 조재연 제공

2008년 6월 향적산 국사봉 등반 기념 사진. 대선자금 수사 끝나고 4년여뒤 윤석열 당시 논산지청장 관할 지역을 찾았다. 앞줄 왼쪽부터 윤석열(대통령), 윤시균(수사관), 신호철, 한동훈(현 법무부 장관), 유일준, 이원곤 검사. 가운데 왼쪽부터 유재만(중수2과장), 김수남(중수3과장), 남기춘(중수1과장), 안대희(중수부장), 문효남(수사기획관), 이완규(현 법제처장), 신원 미상. 맨뒷줄 왼쪽부터 조재연 검사, 김종복(수사관), 조은석, 이명순, 김헌범, 정준길 검사. 사진 조재연 제공

이들은 어떻게 만나 향적산 국사봉에 서게 됐을까. 사진 속 시간에서 5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2003년 10월 검찰은 SK그룹의 대선 자금 제공 사건 수사에 한창이었다. 대검 중수1과와 중수2과가 투입돼 불철주야로 조사를 이어갔다. 중점 수사 대상에 따라 중수1과는 ‘노무현팀’, 중수 2과는 ‘한나라당팀’으로 불렸다. 중수1과에는 남기춘(사법연수원 15기 수료) 과장, 조재연(25기)·윤석열(23기)·박찬호(26기) 검사가 배속됐다. 중수2과에는 유재만(16기) 과장, 정준길(25기)·양부남(22기)·박진만(21기) 검사가 일했다.

“가급적 호남 지역 정치인은 호남 출신 검사에게, 영남 지역 정치인은 영남 출신 검사에게 조사를 맡겨 같은 지역이라 봐준다는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노력했다.”(문효남 당시 수사기획관)

5대 기업+α로 수사 확대가 결정된 다음 날(11월 4일), 이인규 원주지청장과 서울지검 금융조사부의 유일준·김옥민 검사, 한동훈 천안지청 검사가 합류했다. ‘대선기업수사팀’으로 불렸다. 9개월 전 형사9부(금융조사부의 전신)에서 SK글로벌 분식회계 및 그룹 내 부당 내부거래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었다. 특히 이인규는 초대 금융조사부장을 지내고 원주지청장으로 발령난 지 3개월 만의 상경이었다. 강골 남기춘과 금융통 이인규의 결합을 두고선 “강골과 금융통이 만난 드림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는 이인규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대선자금 수사 지휘선상에 있었던 A변호사의 말이다.

“원주지청장으로 있던 그를 대검으로 데려온다고 하자 법무부에서 난리가 났다. 검사 파견은 한 달마다 연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장관에게 보고 없이 연장해 줬다가 혼쭐이 났다. 관행인데 문제로 삼은 것이다. 지나간 얘기지만 몇 달 뒤 인사에서 검찰국장이 교체됐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이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 적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SK그룹 비자금 수사 때처럼 대선자금 수사도 통제가 어렵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여택수 청와대 행정관이 롯데그룹에서 3억원을 받은 혐의를 밝혀내면서다. 그 돈이 열린우리당 창당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드러나자 열린우리당은 여의도 당사를 팔고 영등포 청과시장으로 급히 당사를 옮겨야 했다. 이인규는 박연차 게이트 이전에 이미 노무현의 ‘콧털’을 건드렸다.

서울서부지검에 사무실을 두고 일하던 대검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공자반, 대검 중수3과)은 ‘나라종금 사건 재수사’로 대선자금 수사의 서막을 열더니 안희정·이광재가 연루된 ‘썬앤문 사건’과 막판에 터진 신계륜 전 의원 연루 ‘굿머니 사건’도 깔끔히 마무리했다. 김수남(16기) 3과장, 조은석(19기)·이원석(27기) 검사가 주축이었다.

이처럼 5대 그룹 이상으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전국의 특수통 20여명이 대선자금 수사팀에 모였다. 이 중 9수 끝에 사시 합격한 윤석열은 특이한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