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서 인기리에 읽히고 있는 만화 「침묵의 함대」(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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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전세대의 「향수」를 자극/전함 「대화」기억 다시 떠올려/미선 “선전포고성” …반응 예민
주일 미국 대사관의 무관들이 최근 돌려가며 보고 있는 일본만화가 있어 화제다.
대사관의 종합방위 지원실 담당자는 매주 「코믹 모닝」이라는 만화주간지 속에 연재되는 『침묵의 함대』를 읽은 후 미국의 안보문제 싱크탱크인 「랜드코퍼레이션」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복사해 보내는게 큰 일과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저자이며 중의원 의원인 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태랑)도 이 만화책을 읽은 후 『이런 만화책이 재미있게 읽혀진다는 것은 나의 책이 팔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만화속의 주인공 가이에다(해강전)가 말하고 있는 것은 진실이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처럼 미 일 마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중요한 정책입안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침묵의 함대』는 도대체 어떤 소재와 스토리로 엮어져 있는가. 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본에서 비밀리에 원자력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미 제7함대 소속을 조건으로 극비에 부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원자력 잠수함이 시험항해중에 핵어뢰를 장비한채로 함장 가이에다의 지휘하에 반란을 일으켜 잠적,「독립국가 야마토」를 선언한다.
「미합중국과 일본의 우호ㆍ동맹관계는 형편없이 취약한 것으로 판명됐다」는게 가이에다 함장의 독립선언 이유다.
여기에서 「세계최강의 전투국가」 야마토함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미 소 함대간에 치열한 해전이 되풀이되고 한편 야마토로부터 「우호국가」로 선택된 일본에 대해 미국이 강력한 압력을 가해 「일본 재점령」을 선언한다.
미 소 연합함대를 앞에 두고 가이에다는 말한다.
『평안함만으로 국가가 존속된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을 침몰시키는 편이 낫다. 감옥의 뜰을 거니는 자유보다 태풍의 바다를 마음대로 수영하는 자유를 나는 선택하고 싶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미군의 반격에 침몰해 버린 야마토(대화) 전함을 기억하는 전전세대에게는 「과거에의 향수」를,또 젊은 세대에게는 「무기력하기만한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유혹하는 줄거리다.
아직도 주간지에 연재되고 있는 미완의 장편극만화지만 일본 출판사상 드문 베스트셀러가 될 공산이다. 지금까지 나온 기간분만 단행본 6권으로 출판했으며 모두 3백30만부 가량이 팔렸다는게 출판사(강담사)측 얘기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전쟁감동물인 이같은 만화책이 일본인에게 읽히는 이유는 뭔가. 이를 읽고 있는 사람들의 독후감도 가지가지다.
공명당의 야마구치(산구나진) 의원도 이 만화에 감동되었다는 듯 국회 의정단상에서 『대신은 읽고 있는가』고 물었고 이시카와(석천) 방위청 장관은 『읽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 원자력 잠수함을 가질 생각은 없다』고 말해 자칫 만화속의 얘기가 현실로 받아들여질까봐 우려하는 표정이었다.
한 20세의 대학생은 『단 1척의 배가 세계를 뒤흔다는 얘기는 희극』이라면서도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반응이었고 한 21세의 회사원(여)도 『전쟁은 남자들의 세계고 여자들을 불안하게 한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나온 부분은 모두 읽었다고 했다.
만화속의 주인공이 된 한 자위대(해상 자위대 제2호위함대기함 「구라마」) 함장은 이 만화를 돌려보고 있음을 시인하면서 『부하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고 시인했다.
군사평론가 오가와 가즈히사씨(소천화구)도 이 책은 하나의 만화로서가 아니라 훌륭한 정치학 교과서라면서 『일본 국민이 갖고 있는 「왜 일본만이 두들겨 맞아야 하며 대꾸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또는 욕구불만」에 이 책은 하나의 좋은 해답이 된다』고 까지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만화가 갖는 한계와 정보부족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작품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단독행동이 너무 많다. 자위대가 전쟁하는데는 자위대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많아 실제로 현실에 옮길 수 없는 면이 많다. 만화속에 즉흥적 판단이 많이 나오는 것도 과장』이라고 해상막료감부 광보실장은 평한다.
문제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대미 선전포고적 성격을 『침묵의 함대』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미국 지식인들이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자민당 국제부장 아이치 가즈오(애지화남) 중의원의 미국인 비서 키츠 헨리씨는 만화에 대한 독후감을 묻자 『이 책이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 편이 좋다. 미국 국회의원들이 읽으면 화낼 것』이라고 미국에 소개되는 것을 우려했다.
헨리씨는 그러면서도 이 만화책에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전쟁에 져서도 안된다』는 일본인의 속마음이 잘드러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만화의 작자는 가와구치 가이지씨(42). 명치대 만화연구회 출신으로 전후세대의 의식을 잘 그리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가와구치씨는 이 작품을 그리면서 『전후 소화사를 내 나름대로 총정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만화가 만화로 그친다면 별문제지만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문제로 소해정 파견등 자위대가 과연 헌법의 틀안에 묶여 있어야만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되는 시점에서 이같은 전쟁의식 고취의 만화가 일본내에서 널리 읽혀진다는 것은 이웃인 우리로서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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