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카다피' 영국서 공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리비아 최고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삶을 소재로 한 오페라가 7일 영국 런던의 콜리시엄 극장에서 초연된다. '카다피:살아 있는 전설(Qaddafi:A Living Myth)'이란 제목의 이 오페라는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단'(ENO)이 제작해 7~9일, 14~16일 모두 여섯 차례 무대에 오른다. 현직 외국 국가원수를 예술작품의 재료로 삼은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적대국가로 여겼던 리비아 지도자의 삶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국 언론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88년 12월 런던에서 이륙해 뉴욕으로 향하던 팬암항공 소속 여객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공중 폭발해 270명이 숨진 참사사건을 아직 영국인들은 잊지 못하고 있다.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카다피를 다룬 작품이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공연되는 것에 로커비 사건 유족들은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리비아가 테러지원국에서 친서방 온건국으로 변신한 것이 이번 공연을 가능케 한 배경이다. 리비아 정부 관계자들도 공연의 극본과 내용을 검토한 뒤 'OK 사인'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작품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반서방 노선을 걷다가 갑자기 친서방 노선으로 돌아선 카다피의 모순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삶을 권력과 정치, 그리고 미디어 연출이라는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 그린다. ▶27세의 나이에 무혈 쿠데타로 집권하기 전까지의 청년 혁명가 시기 ▶반서방 독재자로 '80년대 오사마 빈 라덴'으로 여겨졌던 시절 ▶서방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기 시작한 최근 몇 년간 등 카다피 인생 여정의 세 단계를 묘사하고 있다. 또 전환점마다 그 변신의 뒷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조명된다.

대본을 쓴 극작가 샨 칸은 "카다피의 삶은 극적인 양면성이 특징"이라며 "그의 이미지는 서방 미디어에 의해 새롭게 창조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내용은 젊은층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경쾌하게 꾸며졌다. 카다피 역을 맡은 라몬 티카람은 "해학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대사로 관객들을 즐겁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음악가 스티브 산드라 사발레가 영국 전자악단인 '아시안 더브 파운데이션'팀과 공동으로 음악을 담당해 펑크 분위기를 연출한다. 실제 리비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인접국 이집트 민속악단이 ENO 오케스트라와 함께 곡을 연주한다. 연출은 데이비드 프리맨이 맡았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ENO는 로열 오페라단과 더불어 런던의 양대 오페라단의 하나다. 외국 작품은 원어로 공연하는 로열 오페라단과 달리 ENO는 모든 작품을 영어로만 공연해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6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카다피는 반서방 노선을 걷다가 테러단체를 지원한 사실이 밝혀져 86년 미국의 공습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말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친서방 노선으로 돌아섰으며, 올 5월 25년 만에 미국과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