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족(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요즘 대만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워니우주」(와우족),우리말로는 달팽이족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껍질을 달라』(아요각)는 구호를 써들고 데모도 하고,길바닥에 누워 밤잠을 자기도 한다. 정부의 주택정책을 공격하는 시위다.
『집 살 능력도 없는 남자는 안돼! 자네같은 달팽이족 남자에겐 딸을 줄 수 없네.』
대만 TV의 한 코미디 프로에서 매정한 음성으로 말하는 어머니 앞에서 딸은 눈물을 흘리는 시늉을 하고,그를 좋아하는 청년은 맥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부자집 담은 너무 높아서 달팽이가 기어넘을 수 없습니다.』
대만 사람들은 이 코미디를 보며 속으로 눈물을 훔쳤을지도 모른다. 원래 대만은 전통적으로 집이나 땅 문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삼민주의를 제창한 손문은 그의 민생주의에서 「평균지권」의 사상을 설파했다. 이것은 네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는 「땅의 철칙」이었다.
①땅 소유자는 자기의 땅값을 정직하게 신고하고(신보지가) ②신고가격을 기준으로 지가세를 물어야 하며(조가징세) ③땅값 상승에 의한 이익엔 땅값 상승세를 매겨 사회에 환원하고(창가귀공),정부는 땅 주인이 신고한 값으로 땅을 사준다(조가수매).
대만 정부는 「평균지권」 사상을 존중하는 법률들을 만들어 엄격히 시행해왔다. 그러나 법망을 피한 투기가 성행하면서 대만의 토지정책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87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집값은 그동안 두배 이상이 되었다. 대만시에서 10㎞쯤 떨어진 곳에 있는 30평 크기의 아파트값이 우리 돈으로 1억5천만원 이상.
한달 1백만원을 봉급생활자의 12년분 월급과 같은 액수다. 물론 12년을 기다려 그 아파트를 산다는 보장도 없다. 대만 사람들의 마이 홈 꿈은 언덕너머의 무지개일 뿐이다.
대만의 경우 제도는 있는데 행정력이 없어 주택정책이 실패했으며,일본은 반대로 행정력은 있는데 제도가 못미쳐 역시 무주택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자,우리나라는 어느 쪽인가. 제도도 그렇고,행정력도 그렇고,집없는 사람들은 마이 홈은커녕 전세값 뒷감당도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