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 평범한 이웃들의 행복한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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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Smile Again
김경환 외 지음, 좋은생각
232쪽, 1만1000원

지난주엔 지나치게 청승을 떨었나 봅니다. 어느 독자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책을 읽어보니 내 심정과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며 울먹여서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마음이 푸근해지는 책, 읽는 이에게 힘을 주는 책을 고르고 싶었습니다. 마침 그런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내를 살짝 밀어주려 했을 뿐인데/아뿔싸!/사랑을 너무 실었나 보다/아내는 뒤로 콰당 넘어져 버렸다/여보, 정말 미안해요.'

어떤 기분이 드는지요? 한 편의 시 같은 이 줄 글은 책의 사진에 곁들인 겁니다. 옆에는 한겨울 꽁꽁 언 얼음판 위에서 썰매를 타는 부부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중년의 부부가 아이들처럼 썰매를 타는 데 힘에 부친 아내를 남편이 밀어주다 너무 힘을 줬나 봅니다. 나뒹구는 아내와 그 등을 지탱하는 남편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특히 '사랑을 너무 실었나 보다'란 구절이 그랬습니다. 부부란, 이렇게 끌고 밀면서 살아가는 사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엉뚱한 데 힘을 주거나, 한눈을 팔거나 해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진 속의 부부처럼 마음이 같이 기껍다면, 설사 얼음이 꺼져 내린다고 해도 견뎌낼 수 있을 겁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빨랫줄에 줄줄이 널린 오징어 사진이 나옵니다. 거기엔 '오징어가 춤추는 가을날'이란 글이 붙었습니다.

'부둣가에서 싱싱한 오징어를 사왔습니다. 잘 손질해서 절반은 횟감으로 남기고 절반은 마당 가운데 빨랫줄에 나란히 널어 놓았습니다. 오징어가 흥겹게 춤추는 볕 좋은 가을날이면 할머니와 큰삼촌네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할머니는 꾸둑꾸둑 마른 피데기 오징어를 즉석으로 구워내고, 큰삼촌은 콧노래를 부르며 소주잔을 꺼냅니다…아궁이 앞에 둘러앉아 갓 구운 오징어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어느 바닷가의 그림 같은 풍경이 떠오르지 않나요?

책은 출판사가 처음 주최한 포토 에세이 공모전의 당선작 99편을 모은 것입니다. 2500여 점의 응모작 중에서 고른 거랍니다.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 이토록 멋진 사진을 찍고, 정감 어린 글을 썼다는 데 놀라게 됩니다. 아기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어머니, 사랑하는 이의 다정한 눈빛에 화답하는 남자, 한여름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등 순수 아마추어들이 포착한 솔직하고 긍정적인 순간은 미소를 자아냅니다.

미소는 우리의 어색한 침묵을 깨뜨릴 수도 있고, 불안이나 고통을 달래주기도 하고, 눈물을 이겨낼 힘을 주기도 합니다. '미소'의 힘을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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