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본은 불의의 역사를 답습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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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그는 한국.중국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길 희망한다면서 오히려 주변국의 상처를 들쑤신 표리부동(表裏不同)한 행위를 했다. "전몰자 전체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한 것"이라느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라느니 하는 그의 궤변은 그가 책임 있는 정치가가 아니라 전쟁을 미화하는 포퓰리스트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을 포함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상징물로 가득한 곳이다.

차라리 '나는 군국주의자'라든가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정말 원통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그가 "개인 참배"를 강변하지만 총리의 개인 참배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모인 극우주의자들이 '고이즈미 만세'를 외친 것만으로도 참배가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 따른 행동임을 명증(明證)한다. 그는 스스로도 야스쿠니 참배를 공약으로 내세워 총리에 당선됐다. 그는 "언제 참배하더라도 비판과 반발이 변함없으니 오늘(8월 15일)이 적절한 날"이라는 말까지 했다. 인접국이자 가장 큰 피해 당사국의 광복절 아침에 도발하면서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고이즈미 총리의 퇴임 후에도 불의(不義)의 역사를 외면하고 한국인들에게 정신적 테러를 가한 그의 행동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고이즈미의 후임 총리로 거론되는 아베 관방장관에게 간곡히 권고한다. 전임 총리의 정신적 파탄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진정 인접국과 선린 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한다면 잘못된 과거 역사를 깨끗이 청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고이즈미 총리의 행각은 일본의 국가 이미지와 이익을 크게 해쳤음을 명심해야 한다. 새 총리는 갈수록 확대돼 가는 한.일 간 경제.사회.문화적 교류에 발맞춰 정치적 관계도 우호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