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이 일하는 재미 못지 않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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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과소비가 너무하다는 이야기들이 많더군요. 돈을 저축하는 재미도 일하는 재미 못지 않아요』
31일 「저축의 날」시상식에서 최고의 영예인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상한 하선정 씨 (67· 여· 요리연구가) 는 『여생을 보람있게 살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다』 고 밝혔다.
하씨가 은행에 맡기고있는 돈은 25개 구좌에 11억9천7백만 원.「하선정 요리」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가 10억대를 넘는 갑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검소한 삶을 꾸려왔기 때문.
수도수대 가정과 1회 졸업생인 하씨는 중매결혼 한 뒤 54년 서울 종로2가에 우리 나라 요리학원의 효시격인 「수도가정학원」 을 열고 수입 밀을 이용한 분식보급을 시작했으나 1년도 못돼 남편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학원마저 불에 타버리는 비운을 맞게 됐다.
『친정으로 내려갔더니 아버님의 「출가한 여자는 시집귀신이 돼야 한다」는 엄명이 내렸습니다』
이때부터 시집근처의 과수원에 방 한 칸을 세 얻어 어린 딸을 데리고 품앗이를 하며 근근이 돈이 모이면 은행을 찾았다.
다시 전국순회 요리강연을 시작했고 하룻밤에도 수강료가 레이션 박스로 하나씩 쌓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 동안 저축한 돈으로 서울 광화문에 요리 학원을 차렸다.
현재 반포에 있는 「하선정 요리학원」외에도 경기도 안성에 젓갈공장을 갖고 있고 월간지 『이 달의 요리』를 펴내는 등 활발한 사업을 펴고 있지만 매일 은행을 찾는 생활은 달라진 게 없다.
『칠순을 바라보는 요즘에도 외식 한번 없이 내가 손수 지어먹고 있지요』 요리학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우리들도 원장님 따라 모두 재형저축을 들고있다』 고 말한다.
하씨는 환갑 때 잔치얘기를 꺼낸 딸아이와 요리학원 직원들을 나무랐으며 이들이 선물로 준비한 반지· 목걸이를 되 물리는 고집도 피웠다.
주변에서는 하씨가 여지껏 수표 쓰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예금도 모두 적금과 정기예금 뿐이라 증권·부동산에 한눈한번 팔지 않은 「고집쟁이 할머니」 라는 것이 주위의 귀 뜀이다.
하씨는 지금까지 저축한 돈을 내년부터 불우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내주고 머지 않은 장래에 고아원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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