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는 꿈도 우울하다

중앙일보

입력

우울증은 아주 흔한 병이다. 우울한 기분은 누구든 느낄 수 있으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하면 우울증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리면 일반적으로 세가지 욕구가 저하된다. 의욕이 없어지고, 식욕이 떨어지며, 성욕도 감소한다. 잠이 잘 안 오거나 또는 정반대로 잠이 너무 많이 올 수도 있다.

우울증 환자의 잠에는 특징적인 소견이 많다. 우선 건강한 사람보다 꿈이 늘어나고 꿈의 농도가 진해진다.

건강한 사람한테는 꿈이 새벽에 많이 나타나나 우울증에서는 훨씬 더 이른 시간에, 예를 들어 오후 10시쯤 잠이 든다고 가정하면 자정을 전후해서 몰려나온다.

건강한 사람은 잠이 들어 첫 꿈을 꿀 때까지 대개 80∼90분 정도가 걸리며 첫 꿈은 거의 기억을 못할 정도로 잠깐 스쳐 지나간다. 이와 달리 우울증 환자의 첫 꿈은 본격적인 ‘진한 꿈’일 경우가 많다.

우울증 환자의 꿈은 과거에 치중하며 같은 주제를 심하게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꿈속에 나타나는 주제도 가까운 사람과 헤어짐, 박해를 받음, 고통을 겪음 등 우울한 주제가 많고 꿈의 색깔을 암울한 흑백으로 꾸는 수도 흔하다.

건강한 사람의 꿈을 컬러 텔레비전을 보는 것에 비유한다면, 우울증 환자의 꿈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찾기 어려운 흑백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연구자들이 우울증 치료 목적으로 환자를 입원시켜 놓고 꿈을 꾸지 못하게 하고 그 영향을 평가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수면다원기록법을 이용해 환자의 잠을 관찰하다가 꿈을 꾸려고 하는 순간에 환자를 깨워서 꿈꾸는 수면단계를 박탈하였다.

이렇게 했더니 우울증이 단기간 완화 또는 해소되었다는 보고들이 많이 있다. 문제는 실제 임상에서 응용하기가 아주 힘들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또 효과의 지속성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따라서 현재 심한 우울증 환자의 치료에는 항우울제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수의 항우울제들이 꿈꾸는 수면단계가 나타나는 것을 억제하는 약리작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깨우지 않아도 약이 알아서 꿈을 줄여주는 것이다. 항우울제를 써서 우울증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평가하는 데도 환자의 잠의 품질이 좋아진 정도를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잠과 꿈은 흥미롭게도 우울증을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창문 역할을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