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묻다] 미·중 사이 줄타기는 가능한가

[대한민국에 묻다] 미·중 사이 줄타기는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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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⑤ 미·중 사이 줄타기 가능한가

일러스트 = 배민호 minodico@hanmail.net

일러스트 = 배민호 minodico@hanmail.net

“그래도 새우는 아니고 돌고래는 된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미, 대중국 정책은 21세기 봉쇄전략 #결정적 승부처는 첨단기술 분야 #한국이 배신할 수 있다 생각 들면 #대중국 군사진용 짤 때 배제할 것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한·미 동맹은 외교의 근간이지만 #중국이 제시하는 기회도 포기 못해 #미, 한국 불신해도 미군 철수 안할 것 #문 정부 반미? 오히려 중국이 소외돼

미국과 중국 싸움에 한국 등이 터진다는 걱정을 들으면 외교 당국자들이 종종 하는 농담이다. 언뜻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고래 두 마리가 목숨 걸고 싸우겠다는데 새우는 위험하고 돌고래라고 안전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최소 30년은 간다는 미·중 대결. 한국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세계 질서는 해체되고 있다. 대신 미래 한 세대의 운명을 좌우할 ‘전쟁’의 초입에 서 있다. 군사 분야를 넘어 경제·우주까지 아우르는 다영역 복합전이다. 미·중은 각기 견인과 압박을 오가며 한국에 줄을 서라고 요구하는데, 한국은 어느 한쪽이 폭발하지 않을 정도로만 줄을 넘나든다. 이게 오히려 미·중을 자극하는 회피적·편의적 대응일 수 있다.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질문을 이제 던져야 한다.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 사이 줄타기는 가능한가.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그 모든 것보다 남북관계가 우선인가. 지금 당장보다는 30년 뒤 오늘을 돌아봤을 때 ‘정답이었다’고 할 외교 좌표를 찾아내야 한다.

“첨단기술 분야선 미·중 사이 양다리 안 통한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미국의 대중 정책을 ‘21세기형 봉쇄 전략’으로 표현했다. “첨단기술 분야에서만큼은 한국의 미·중 간 양다리 걸치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국이 배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미국은 중국에 대항할 군사적 진용을 짜면서 한국을 배제해 버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 참여해 외교안보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외교통상부 2차관 출신의 그를 지난달 16일 만났다.

미국과 중국, 얼마나 오래 싸울까.
“30년 전쟁의 시작이다. 우리 대통령 6명의 임기 동안 간다.”
전면전이 일어난다면 어느 분야인가.
“군사 분야에서 격차를 좁혀 오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육·해·공군력을 넘어 사이버 및 우주 분야까지 다영역 복합전으로 대응 전략을 바꿨다. 최전선은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동남아 인근이 될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미국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퇴출시키겠다는 디커플링을 시도 중이다. 결정적 승부수는 글로벌 상호 의존도가 이미 높은 소비재가 아니라 첨단기술 분야다. 중국도 ‘제조업 2025’에 명운을 걸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에선 미·중 간 양다리 걸치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국의 줄타기 마지노선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그어진다는 뜻인가.
“그렇다.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지, 미·중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면 곤란하다.”
좌고우면하면 어떻게 되나.
“미국이 새롭게 글로벌 가치사슬을 매핑할 때 우리의 위치 선정을 불리하게 할 수 있다. 미국의 대중 전략은 ‘21세기형 봉쇄전략’이다. 압도적 힘으로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막으면서 첨단기술 동맹을 통해 중국이 4차 산업혁명의 아성을 위협하지 못하게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다.”
미·중이 세게 붙으면 누가 이기나.
“동맹과 우방을 모두 규합해 붙는다는 전제하에 미국이 우세하다.”
문재인 정부의 우선순위는 북한 문제다. 북한 문제를 앞에 놓고 대미·대중 전략을 짜는 왝 더 독(wag the dog·강아지 꼬리가 몸통을 흔듦) 상황 아닌가.
“그렇다. 지금은 몸통이 미·중 관계고, 꼬리가 북한 문제다. 지각변동이 일어나는데 꼬리를 잡고 몸통을 흔들려 하니 문제 해결은 안 되고 강아지는 화가 난다. 미국은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우리 쪽으로 올래, 핵을 갖고 중국과 한 패키지로 묶여 같이 봉쇄 타깃으로 전락할래’라고 최후통첩을 할 것이다. 다음엔 한국을 향해 ‘북·중이 모두 타깃인데, 어떻게 할래’라고 물을 것이다. 한·미 동맹의 작동 대상을 북한을 넘어 중국으로까지 확대하라는 엄청난 도전이 오고 있다.”
한국이 애매하다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까.
“한국이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할 수 있다고 인식하면 미국의 외교 전략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급속히 축소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주한미군 철수부터 시작해 21세기형 대중 전략의 군사적 포메이션을 짤 때 한국을 배제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대비책은.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삼성·SK·LG가 동아줄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첨단기술 동맹에서 주된 역할을 해 미국이 주한미군에 손을 대지 못하게끔 하는 역발상도 필요하다.”
현 정부도 한·중 관계보다 한·미 동맹이라는 것까지는 인식한다.
“미국을 최고의 파트너로 세팅한다고 해서 중국이 적은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를 차순위에 놓고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에 앞서 정리할 대목은 대일 관계다. 대일 관계를 과거에 묶어둔 채 중국을 관리하려는 것은 송곳니, 어금니 없이 갈비를 뜯는 것과 똑같다. 당국자들이 자꾸 미·중 간 선택을 거론해서도 안 된다. 우린 미국과 동맹을 맺은 시점에 이미 선택했고, 이제 와서 그것을 바꿀 타이밍은 아니다.”
30년 안에 바꿀 타이밍이 올 수도 있을까.
“있다. 미국이 일을 크게 망치는 상황이 올 수 있고, 영원한 동맹이란 없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등 다양한 변수를 놓고 봤을 때 향후 30년간 아직 승자는 미국이다. 중국은 아직은 엄청난 숙제를 받아 든 잠재적 패권국이다.”

“양다리 피할 일 아니다, 국민 고통 적은 길 찾아야”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문재인 정부에서 첫 국립외교원장(차관급)을 지낸 조병제 전 원장은 미·소 간 냉전과 미·중 간 2차 냉전을 비교하며 “미국은 결집했던 동맹의 뿌리를 흔든 반면, 소련의 실패에서 배운 중국은 전과 달리 주변국 외교를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차이를 규정했다. “미·중 간 양다리 걸치기를 안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면서다. 1981년 외무부에 입부해 평생 외교관으로 근무한 조 전 원장과 지난달 19일 만났다.

미국과 중국, 얼마나 오래 싸울까.
“적어도 30년은 간다. 미·중 간 신냉전은 4~5년 됐고, 겨우 초입이다.”
전면전이 일어난다면 어느 분야인가.
“군비 증강 대결이 두드러지지만 경쟁의 밑바닥에는 결국 경제가 있고, 핵심은 과학기술이다.”
세게 붙으면 누가 이기나.
“1차 냉전 때 미국은 국내·국제적 역량을 100% 동원해 강력한 힘을 발휘해 승리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국내적으로는 분열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국제적으로는 동맹의 뿌리를 흔들어 놨다. 반면에 중국은 소련의 실패에서 배웠다. 특히 시진핑 주석 2기 들어 주변국 외교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지금 같은 방식을 4~5년 더 취한다면 중국과의 싸움에서 불리할 수 있다.”
미국이 국제적 역량 운집을 위해 한·미 동맹을 대중 견제용으로 확대하려 한다면.
“지금 상황은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선제적 대응엔 한계가 있다. 앞날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면서 무작정 앞서 나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미국이 동맹을 중국 견제용으로 확장하려 한다는 가정도 마찬가지다.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제시하는 기회도 앞서서 포기할 수 없다. 스스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내고 그에 답하려는 것은 자충수다. 진행 경과를 보며 적응해 나가는 게 현실적 전략이다.”
미·중 간 양다리 걸치기처럼 보일 텐데.
“지금 우리 상황에서 남들 보기에 명분 있고, 멋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욕을 먹더라도 경제·안보적 측면에서 우리 국민에게 고통이 가장 적게 오는 길을 찾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오해받지 않기 위해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데, 원칙이 무엇인지 불확실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원칙이 무엇이든 지키려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고통을 견딜 각오가 돼 있는가. 양다리 걸치기를 안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고통을 견뎌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한국을 불신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등 대응에 나설 수도 있지 않나.
“미국이 주한미군을 두는 것은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전략적 환경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한 일정 수준의 미군은 유지할 것이다. 한국을 벌주기 위해 미군을 철수한다는 것도 미국이 취할 전술이나 전략은 아니라고 본다.  외환 관리부터 원자력 발전 등까지 미국이 한국을 벌주려면 플러그를 뺄 수 있는 분야는 매우 많지만 쓰지 않는 힘이다. 아무 때나 행사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반미 하려고 친중 한다는 비판까지 듣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반미 한다고 하는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관련 노력을 하며 중국을 불러들인 적이 있나. 아니다. 미국과 했다. 오히려 중국이 소외됐다. 남·북·미 정상이 2018~2019년 다섯 번 만나는 동안 북·중 정상회담도 다섯 번 열렸다. 중국이 한반도 상황이 변화하는 국면에서 마음을 못 놓으니 북한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이 이렇게까지 나서지 않도록 중국 이익이 무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어야 한다. 그런데 친중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에 두고 이를 중심으로 상위 구조인 대미·대중 전략을 짜기 때문에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중 관계는 과거에도 남북관계의 상위 구조였다. 하지만 북핵 문제 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이 미·중·일 등 주변국 관계에서 우리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은 물리학의 법칙처럼 분명하다. 남북관계 개선은 대미·대중 정책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중국 경제보복 버티고 있는 호주, 중국에 3불정책 약속한 한국

호주, 코로나 기원 조사 제안 뒤 냉각 

2014년 11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호주 의회를 찾아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자”고 했을 때만 해도 6년 뒤 양국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호주가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국제사회에 제안한 뒤 중국은 호주산 소고기·보리·와인 등 호주와 관련된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규제하고 있다.

4분의 1이 대중 교역인데, 호주가 괴롭지 않을 리 없다. 9월 28일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는 호주 경기가 28년 만에 불황을 맞았다고 전했다. “미·중 모두와 친밀하게 지내며 균형 있는 외교를 해온 게 호주의 안정적 성장을 지탱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는 걸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호주는 미국과 동맹이면서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한국과 닮았다. 4년 전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사드 보복을 당한 것도 비슷하다. 그런데 대응은 영 딴판이다. 미 브루킹스연구소는 “중국과 가까워지며 호주 국민이 점차 인권 등 공산주의 체제의 실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양보할 수 없는 원칙에 대한 호주 국민과 정부의 신념이 스스로 중국을 멀리하는 내부적 동인이 됐다는 것이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지금도 “우리는 가치관을 팔지 않는다”며 버틸 수 있는 이유다. 입 꾹 다문 한국과 달리 홍콩 국가보안법도 앞장서 규탄 중이다.

사드 보복이 한창일 때 한국 외교관들은 그보다 앞서 중국으로부터 희토류 금수 보복을 당했던 일본의 외교관들에게 해법을 묻곤 했는데,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고 한다. “버텨라.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한국은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발전을 안 하겠다는 이른바 ‘3불 정책’을 약속했다.

버텨낸 일본, 버티고 있는 호주, 합의로 봉인한 한국. 누구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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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고정애·김영훈·하현옥·유지혜·권호·박수련·이소아·윤석만·강기헌·하남현 기자 q202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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