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묻다] '문파 vs 태극기' 편가르기는 죄인가

[대한민국에 묻다] '문파 vs 태극기' 편가르기는 죄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창간기획] ① 편가르기는 죄인가

일러스트=배민호 minodico@hanmail.net

일러스트=배민호 minodico@hanmail.net

인간은 집단을 만들고 또 집단에 속한다. 의식을 공유하고 또 확장한다(hive mind·집단의식). 이른바 내 편 네 편이다.
따라서 편가르기 자체를 비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면을 외면할 순 없다. 특정 정보만 수용·증폭하거나(echo chamber·반향실) 극단화하는 경향 말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 #의사vs간호사, 다주택vs무주택… #편가르기가 불리하지 않다 여겨 #운동권 세력이 권력 이어가는 현상 #문 정부 이후에는 쉽지 않아 보여 #김호기 연세대 교수 #최저임금 인상, 긴 안목 부족했고 #부동산정책, 정부 신뢰 약화시켜 #팬덤이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시대 #차기정부 국정목표는 통합이 될 것

광화문과 서초동, 추미애 비판과 옹호, 구적폐와 신적폐, 토착왜구와 친북 주사파…. 민주화 세력 특히 586이 집권한 이래 거대한 분단선을 마주하고 둘은 상시적 내전 상태다. ‘문빠’, ‘태극기’에게 상대는 절멸의 대상일 뿐이다.

효율적 프레임(개념틀) 선점을 위해 정치공학자들이 양산한 ‘네모인 동그라미’들이 상식을 허문다. 역사 공간은 친일·반일로, 현대사는 민주·반민주의 대결로 협소해지고 익숙했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 구도는 다주택자와 아닌 자, 의사인 자와 아닌 자 등으로 세분화한다. 이 사이 미래(또는 해법) 대신 과거와 현재가 뒤엉킬 뿐이다. 그래서 질문한다. 내 견해는 다른 모든 견해에 우선하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익은 무시되어도 좋은가. 지금의 갈라짐은 한국적 현상인가. 편가르기는 죄인가.

“여권, 상대를 경쟁자 아닌 적으로 봐…정치적 적대감 이 정도였던 적 없어”

강원택 서울대 교수

강원택 서울대 교수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보수정부 시절엔 중도진보로 분류되곤 했다. 근래엔 보수 성향이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스스론 “같은 자리에서 집권세력에 대한 학자적 비판을 했을 뿐인데 세상이 그렇게 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에게 근래 가장 고민인 주제를 물었더니 “낙인을 찍고 세상을 둘로 쪼개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른바 편가르기다. 그와 18일 만났다. 그는 “취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강조했던 메시지가 통합이었는데, 지금 보면 우리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갈라져 있는 것 같다”며 “대부분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보다 심하다”고 했다.

갈등이 증폭됐다고 보나.
“정치적 경쟁집단 간 적대감이 이 정도였던 적은 없었다. 상대방은 경쟁자(opponent)인데 적(enemy)으로 보는 것 같다. ‘적폐청산’이란 용어 속에는 ‘우리가 집권하기 전엔 모든 게 악이었다’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원내대표까지 지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야당을 쿠데타 세력이라고 불러 몹시 놀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못지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과거 같으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해주는 중간세력이 있었다. 대통령도 갈등이 심각해지면 어쨌든 그걸 풀어내려고 했다. 이젠 진영논리의 한 축을 대통령이 담당하고 있다. (보수정부 때) 국정교과서를 예로 들면, 갈등이 심했지만 이념적·정책적 측면이 있었다. 현 정부에선 이념적·정책적 지향보다 인간적·동지적·운동권 중심의 내 편과 아닌 편으로 갈라짐을 보인다. ‘내 편’에서 생긴 문제는 그걸 공정이나 가치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기반을 약화하려는 정략적 의도로 보고 어떤 경우든 보호하려 한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형인 이상득 의원이 수감됐고,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도 대통령의 아들이 감옥에 갔다. 이번 정부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 같다.”

강 교수는 현 정부의 ‘내 편’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인 인적 구성”이며 “협소하다”고 했다. “훈장을 달아야만 쓴다”는 표현도 썼다. 노무현 청와대, 참여연대·민변 출신 등을 지칭한다.

편가르기에 집권세력의 책임이 크다는 언급인가.
“그렇다.”
이들이 선악(善惡)·적아(敵我)로 나눈다고들 말하는데 이들의 본성인가, 전략인가.
“둘 다라고 본다. 80년대 운동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억압적 권력에 맞서기 위해 도덕적 정당화가 필요했다. 그건 운동권의 논리이고, 제도권 정치로 넘어왔으면 경쟁자로서 인식해야 하는데 안 되는 것 같다. 한편으론 그런 게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친일파, 의사와 간호사, 집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 등으로 다수가 될 수 있는 쪽으로 뭔가를 계속 던져준다. 포퓰리즘 행태이기도 하다.”
‘국민의 40%는 조국 편’이란 여당 의원의 발언이 떠오른다.
“분산된 60%보다 결속된 40%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야당이 그 60%를 못 챙길 것이니 40%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결국 야당이 약하다고 보는 건데, 물론 야당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오만을 낳는다.”
현 정권 이후 지금의 현상이 완화될까.
“제발 완화됐으면 좋겠다. 다소 나아지지 않을까. 세력으로서의 운동권이 권력을 이어 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이 이들을 묶어내는 구심점이 되고 있지만 차기에도 그런 역할을 할 인물이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민주당의 태도도 우려했다. “대통령과 정부를 돕는 역할 못지않게 입법부의 일원으로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도 있는데, 열린우리당의 경험 탓이라곤 하나 정권 경호대 같은 역할만 한다. 이런 정도로 사회가 분열된 데는 민주당의 책임도 매우 크다.” 결국 제도 개선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을 “민주화 이후 가장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고 지칭하면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과 다당제 확립이다. 그는 “수직적·수평적 권력 분산과 완충 역할을 할 제3, 4당이 공존하는 다당적 구조에 대한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됐다”고 말했다.

“586, 결과물에 대한 책임윤리 부족…민주·반민주 구도로 한국정치 갈라”

김호기 연세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조심스러워했다. 질문에 따라 “데이터를 봐야 한다” 같은 말을 자주 했다. 사회과학자로서 인상비평을 피하려는, 어찌 보면 당연한 태도다. 동시에 진보 성향의 학자 중 한 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현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사회의 편가르기가 극심한 편”이라고 했고, 집권세력인 586에 대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고 했다. 17일 오전,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한국 사회의 편가르기, 극심한가.
“편가르기의 다른 말은 사회갈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념·계층·젠더 갈등 정도가 대단히 높은 편이다. 최근 2, 3년간 ‘586세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가 더해지면서 세대 갈등도 부상했다.”
문재인 정부와 관계 있나.
“글쎄. 자료를 봐야 한다. 확실한 건 노무현 정부 이후 갈등이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가 돼서야 민주화 세력이 단독으로 권력을 쟁취했다. 진보세력이 나름의 방식대로 통치하려 들자, 보수세력의 소외감이 커졌다.”
그런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게 문 정부다.
“현 정부에는 적폐청산이라는 과제가 추가로 부여됐다. 촛불집회 때 나타났던 앙시앵 레짐(구체제)에 대한 청산 요구로 이념적·정치적 대립이 격화된 부분이 있다.”
현 정부의 집권세력인 586 엘리트들이 갈등을 격화시키진 않나.
“적과 동지의 이분법, 즉 민주 대 반(反)민주의 구도로 한국 정치를 보는 시선이 분명히 있다.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많은 경우 선악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여러 개의 답이 있고, 그중에서 최선의 답을 선택하는 식이어야 한다. 막스 베버의 말을 빌리자면, 586엔 옳고 그름에 대한 ‘신념 윤리’는 있지만, 결과까지 책임지는 ‘책임 윤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김 교수는 586이 주도해 쟁취한 민주화에 대해서도 절차적 민주화와 실질적 민주화를 나눠 문제를 제기했다. “586세대에 부여된 역사적 과제인 민주화를 내실 있게 다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동산이나 역사 등 정의를 독점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586들은 절차적 민주화를 이루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실질적 민주화와 관련해선 재고가 필요하다. 국민들이 보기에 586의 역량에 의구심이 커졌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은 성공적이었지만, 소득주도성장 등은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 정책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다.”
그러니까, 실력이 없다는 건가.
“중도가 원하는 건 이념의 선명성이 아니라 정책 성과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만 해도 첫해와 이듬해 10% 이상 올렸다가(2018년 16.4%, 2019년 10.9%)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2020년 2.87%, 2021년 1.5%). 긴 안목이 부족했다.”

전망도 썩 밝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에 대한 전망 말이다.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간지대가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왜 중간지대가 사라지는 건가.
“제이슨 브레넌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Against Democracy』(민주주의에 반대한다)에서 유권자를 소극적인 호빗(Hobbit)과 적극적인 훌리건(Hooligan), 합리적인 벌컨(Vulcan)으로 분류했다. 훌리건이 미국 정치를 쥐락펴락한다는 건데, 이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이들의 다른 이름이 바로 ‘빠’다. 21세기 포퓰리즘 시대는 팬덤이 정치를 이끌어간다. 회색지대가 줄어들고,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시대가 돼가는 이유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극단주의와 온건주의는 진자처럼 오간다고 본다. 지금은 극단주의의 목소리가 크지만 한계에 도달해간다. 차기 정부는 어떤 정부든 통합을 국정 목표로 내걸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이 상태로 놔둘 수는 없지 않나. 보수의 대한민국과 진보의 대한민국을 하나의 대한민국으로 만들 후보에 대한 지지가 있지 않겠나. 역사는 알 수 없지만….”

관련기사

특별취재팀 = 고정애·김영훈·하현옥·유지혜·권호·박수련·이소아·윤석만·강기헌·하남현 기자 q202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