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대신 머리 승부 황제가 노련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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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가 마지막 퍼트를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리버풀 AP=연합뉴스]

우즈가 18번 홀 그린을 떠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즈는 "5월 세상을 떠난 아버지께 우승을 바친다"고 말했다. [리버풀 AP=연합뉴스]

타이거 우즈(미국)가 24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 인근 로열 리버풀 골프장에서 끝난 135회 브리티시 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5언더파를 쳐 합계 18언더파다. 2위 크리스 디마르코(미국)가 16언더파, 3위 어니 엘스(남아공)가 13언더파로 뒤를 이었다.

우즈는 이 대회에서 완벽하게 변신했다. 폭발적인 장타로 상대를 압도하는 전사(戰士)에서 노련하게 판세를 분석하고 수 싸움을 하는 바둑기사로 변했다. 그리고 힘 자랑뿐 아니라 머리싸움에서도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즈는 이 대회에서 자신의 가장 큰 무기인 드라이버를 거의 쓰지 않았다. "연습라운드에서 공을 쳐 보니 페어웨이가 딱딱해 거리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며 2번 아이언이나 3번 우드로 티샷을 했다. 올 시즌 드라이브샷 정확도 55%였던 우즈는 주로 아이언 티샷을 하면서 정확도가 86%로 올랐다. 참가선수 중 최고였다. 반면 거리는 처졌다. 함께 경기한 동반자에 비해 심지어 80야드 뒤에서 두 번째 샷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전문가는 '거리가 무기인 우즈가 드라이버를 쓰지 않는 것은 펠레가 발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 '현대 골프는 거리 게임이어서 아이언 티샷 작전은 소용이 없다'며 비아냥거렸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즈는 4라운드(72홀) 가운데 한 차례만 드라이버를 썼다. 세컨드 샷 거리가 길었지만 높게, 낮게,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휘어지는 다양한 샷으로 딱딱한 그린에 공을 올렸다. 그래서 롱아이언을 쓰면서도 쇼트아이언을 쓰는 선수들보다 그린 적중률이 높았다. 우즈의 그린 적중률은 81%로 2위다.

이번 우승은 30대로 접어든 우즈의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20대이던 1997년 마스터스에서 12타차, 2000년 US오픈에서 15타차로 우승하는 등 KO승을 거뒀던 우즈는 이번 대회에서 30대의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계가 골프에서도 성공했다. 파4에서는 철저히 지키고 파5에서 버디나 이글을 잡는 우즈의 작전은 완벽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우즈보다 멀리 치는 선수가 나타나고 있지만 우즈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황제의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우즈는 이로써 메이저대회 11승을 거뒀다. 월터 헤이건과 함께 메이저 최다승 공동 2위로 올라섰고, 잭 니클로스가 갖고 있는 최다승 기록(18승)에 7승차로 다가섰다.

준우승한 디마르코는 지난해 마스터스에서도 연장 끝에 우즈에게 졌다. 후반 들어 버디 4개를 잡으며 우즈를 추격했지만 지난해 패배의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디마르코는 우즈처럼 최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디마르코는 "우승은 놓쳤지만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서 나를 지켜봐 주신 듯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허석호는 4라운드에서 2언더파를 더해 합계 8언더파로 공동 11위에 올랐다. '톱10'에는 들지 못했으나 한국 남자선수의 브리티시오픈 도전 사상 최고 성적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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