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중 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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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제신문 사회면에 난 사진 한장은 국민의 고소를 사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첩첩으로 4중 통제의 진을 치고있는 전경 앞에서 생후 1개월 짜리 병든 아기를 안고있는 한 엄마가 울고 있었다. 병원에 가려는 것을 경찰은 막무가내로 막았다.
병력 6개 중대 9백명 출동, 3개 출입문 봉쇄, 건물 출입구, 응급실, 지하입구 차단, 무술병력 3백명 배치.
이쯤 되면 무슨 난리라도 난 것 같지만 실은 15일 서울대학병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국은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임수경 양을 격리시키기 위해 그 조치를 춰했다.
하루평균 외래환자 3천5백명, 출입관계자 1만명. 이런 병원이 거의 마비되는 마당에 그까짓 갓난아기 하나쯤은 문제될 것 없다.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젊은 엄마만 딱해 보인다.
필경 이것은 높은 자리에 있는 어떤 나리가 근엄하게 한마디 한 것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비단 서울대학병원에서만 본 것은 아니다. 대학에 무슨 데모가 났다하면 그 대학은 물론 그 동네까지 마비되는 일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그 사회심리를 한 꺼풀 벗겨보면 바로 우리 나라 관가의「일사불란」적 사고, 「원천봉쇄」의 작전적 발상, 사리분별보다는 위를 쳐다보는 일이 더 급한 공명심, 국민은 더러 밟아도 괜찮은 민초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존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국민은 바로 그 점이 기분 나쁘다.
그까짓 임양 하나 때문에 이 살벌한 세상에 그처럼 많은 경찰이 한가하게 병원 앞마당에서 환자들의 출입이나 막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이 먼저얼굴이 뜨거워질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민주주의를 외치고, 권력자가 아무리 민주주의를 웅변하고 약속해도 그런 사고방식과 악습과 잠재심리를 씻어 버리지 않는 한 그 길은 멀고 고되기만 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권력자들의 혀끝에 매달러 있을 뿐 그들의 마음속까지 파고들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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