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학 500년 "총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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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유학 사 5백여 년에 대한 일대 정리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원장 이호형·한문교육과 교수)은 고려말부터 해방이전까지의 우리 선현들이 남긴 유학 경전에 대한주석 서를 수집, 체계적으로 정리한『한국경학자료집성』을 펴내기로 하고 최근 1차로『대학』『중용』에 대한 주석서 17책을 간행했다.
대동문화연구원은 6년 계획으로 계속『논어』『맹자』『시경』『서경』『역경』『예기』 『춘추』『가례』『소학』『근사 록』『심경』등에 대한 주석자료를 수집, 총 20만 페이지 3백 책으로 집대성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외에 산재해 있는 유교주석서는 2천5백 종, 20만 쪽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연구원 측은 이와 같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동양철학·한문학·국문학·유학 등의 한국학관련 석·박사과정 중에 있는 연구원 1백여 명을 동원, 국내의 공공 및 대학도서 관·개인장서가·종친회 등을 대상으로 문헌수집에 나서게 된다.
수집된 자료를 유학과 한문해독에 능통한 학자 10여명의 면밀한 고증을 거쳐 저자·간행연대·주석서가 갖는 특징들을 밝히게 된다.
이렇게 수집·문헌고증까지 마친 자료를 시대 순·경전별로 배열, 영인 해 엮게 되며 여기에 다시 경전별로 전문학자 50여명이 참여, 문헌 1종 당 10여 페이지 총 6천여 페이지의 해제를 덧붙일 예정이다. 94년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전집의 규모는 신국판 평균 7백 페이지에 모두 3백 책.
유학에 있어서 경전의주석사는 곧 유학 사라 할만큼 주석 속에는 주석자의 사상뿐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까지 담겨 있다. 또 모든 학설에 대한 논쟁이 경전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점을 감안한다면 주석에 대한 체계적 정리작업은 유학이 지배적인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사상사 내지 철학사의 정리 작업과 통함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공자가 경전을 집대성, 산삭·정리작업을 거쳐 유학의 체계를 갖춘 데 이어 주자가『대학』『중용』『논어』『맹자』등 사서를 비릇, 유가경전에 대한 주석 정리작업을 통해 이론적 근거 내지 형이상학적 설명을 제시했다. 청 대에 들어서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전적의 정리·보존작업을 펴 역대학자들의 연구성과들을 체계적으로 묶은『사고전서』『황청경해』등을 남겼다.
한편 임진왜란 후에야 비로소 유학이 전래된 일본에서도 근세 들어『일본명가사서주석전서』(전 13권)등을 출간, 자국의 선대학자들이 이룩한 업적을 정리·연구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동유사서해집평』등과 같이 문집 50여종을 참고하여 선현들의 설을 채록한 책도 있고 학파별로 선사들의 설을 수집, 정리한 편저들도 있지만 경학 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했었다. 이와 같이 원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학 연구자들은 연구 자체보다 흩어져 있는 해당자료를 찾는데 더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이번 유학경전 주석서 집대성 작업은 지금까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이 분야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 해주는 활력소가 될 것 같다.
또 중국·일본은 물론미국과 유럽의 각 대학도서관 및 동양학관계 연구소들에 보내져 한국유학이 단순 수용에 의한 중국유학의 아류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한국사상임을 인식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특히 민주화와 더불어 실학의 철학적 배경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유학경전 주석서 집성은「실학파의 경학」에 대한 결정적 자료로도 기능 할 수 있을 것 같다. 관념론에 치우친 경직된 성리학에서 벗어나 정치·경제·사회 등 현실 전반문제를 다룬 조선후기의 실학도 실은 공자를 새로이 해석한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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