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정부 1연을 생각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 정권의 지난 1년을 간단히 평가하기는 힘들다. 그동안의 변화가 엄청나게 컸고, 아직도 우리는 그 변화의 가운데 있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나 방향의 적정성여부, 변화의 질과 양에 대해 냉정하고도 공정한 평가를 하기에는 이르다.
그렇지만 6공 출범후의 1년 동안 우리가 겪은 변화를 정부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때 몇 가지 긍정적인 대목과 미흡한 점을 함께 지적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6공정부가 권위주의를 버리고 나름대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과거와 같은 강권정치가 사라지고 사회의 자율이 넓어졌으며 인권상황이 상대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은 정부의 공로가 아니라 시대적 추세의 산물이라 할 수도 있지만 6공정부가 추세에 순응하여 민주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온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국제정세의 새로운 기류에 힘입어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전개한 것도 평가할 만 한 일이다. 가시적 성과를 성급하게 추진한 부작용과 무리가 없지 않지만 대 공산권관계에 있어 정부가 주도한 지난 1년간의 변화는 인정돼야 마땅하다.
또 쉽게 잊혀지긴 했지만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도 자부할만한 기억이었다.
이처럼 긍정적 대목이 있는 반면 지난 1년간 6공정부가 드러낸 문제점과 미흡한 점, 향후 과제로 삼아야 할 일도 매우 많다.
먼저 노 정부의 민주화추진 진도와 그 질량이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노 정부는 점진적 개량주의를 표방했지만 5공 청산과 민주화의 정착에 있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광주문제를 포함한 5공 청산 작업에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고 정권내부의5공적 체질을 개혁해내는데 있어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유지·발전시키는 필수적 요청이라 할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비전제시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간 소외돼온 근로자·농민계층이 체제 내 개혁에 희망을 걸 수 있어야 정부가 말하는 체제수호도 가능하다. 이들이 체제 내 개혁에 절망할 때 과격·혁명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체제수호를 말로만 외칠 뿐 이들의 문제를 체제 내에서 가능케 할 경제민주주의의 청사진은 여태 내놓은 일이 없다.
세째, 민주사회의 제 질서를 수호·유지하는데 무능을 드러낸 점이다. 민주화와 자율이 범죄나 무질서의 방치를 뜻하는 것이 아닌데도 민주사회의 시민이 국가로부터 제공받아야 할 최소한의 보호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치안·교통·공해 등에 대한 정부기능이 전례 없이 낮은 수준에 있지 않나 우려된다.
네째, 정권중앙의 심각한 구심력결손문제다. 6공 정부에는 이른바 주도세력이라 할만한 중심이 없고 그에 따라 필요할 때 필요한 결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흔히 결단을 못하는 정치, 나약한 정부라는 말이 나오고 후수 정치만 한다는 지적을 듣고 있다. 이런 구심력을 갖춰야 앞서 말한 민주화도, 경제민주주의도, 질서유지도 추진할 태세가 가능해질 것인데 이 점에 관한 보강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1년을 보낸 노 정부로서는 다시 곧 중간평가라는 시련을 겪어야 할 운명인데 지난 1년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와 겸허한 반성에서 2년째의 임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