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판문점 북쪽」|김현일<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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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446차 군사 정전위가 열린 13일의 판문점. 구름 한점, 바람 하나 없이 쾌청했다.
「금강산관광」의 설렘이 컸기에 늘 그랬던 맑은 공기와 온화한 날씨마저 뭔가 좋은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철없는 성급함을 자아내게 했다.
회의소집 요청시 의제를 통보하는 관례마저 깬 것부터가 애당초 틀려먹은 것이었고 지난 8일의 고위당국자 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 북한측의 팀스피리트 훈련 시비로 결렬됐었기에 기대는 금물이었지만-.
하기야 생떼 쓰는게 어제 오늘의 일이었나. 갑자기 상전벽해의 변화를 바란 것이 잘못일 수 있었다.
오전 11시, 회의가 시작됐다. 예의 대남 비방 포문이 열렸다.
공산측 수석대표로 공개회의에 첫선을 보인 최의웅은 그의 전임자들과 성난 표정. 목소리가 어찌 그리도 같은지.
최는 3일 조산초소 부근에서 남측이 총격도발을 했고, 4일에는 남한 해군 함정 4척이 장산곶 인근 영해를 침범했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또 팀스피리트 훈련이 긴장을 고조시켜 남북대화를 방해한다는 단골 메뉴를 앵무새처럼 되풀이 했다.
3일 건은 우리 측의 총기 오발사고 였고 사고직후 북측에 통보, 그들도 수긍했던 것이며 유엔 측이 공동조사까지 제의했던 내용. 함정 침범 문제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부분이었다.
북측의 회담자세는 시종일관 상대를 큰 목소리로 비난하려는 저의뿐 이었다.
그렇다면 남쪽의 동족들을 들뜨게 한 금강산 관광은 허사였던가.
남쪽의 우세한 문물이 가져올 엄청난 충격을 알면서, 때문에 지금까지 지켜온 유일체제가 깨질지 모르는 위험을 절감하는 북한이, 그리고 김일성의 무력적화 의지가 여전함을 아는 남한정부가 각기 추진하겠다고 한 남북교류와 협력의 정체는….
이번 회의를 마지막으로 유엔측 수석 대표직을 떠나는 「펜들리」미해군 제독은 『저들이 변하기는 했지만 정치선전 일변도의 자세는 여전하다』고 탄식했다. 개전의 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공산 측의 회담자세를 지켜본 뒤 판문점을 나서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판문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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