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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협상 10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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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북한의 협상술은 정평 나 있다. 벼랑 끝 전술은 '전매특허'. 위기지수를 한껏 올려놓고 배수진을 친다. 다음은 살라미(salami) 전술. 이탈리아 음식 살라미 소시지에서 따온 말로 얇게 썰어 먹는 것을 빗댔다. 의제를 잘게 쪼개 야금야금 이득을 챙긴다. 둘은 정석(定石)으로 굳어져 있다. 대화 일꾼들의 솜씨도 간단찮다. 이중(二重) 허리는 기본. 속담을 줄줄 꿰는 말발에 언제든 자리를 박차는 배짱도 한결같다. 베테랑 남한 대표도 넌더리를 낼 수밖에. 1992년 북한과 첫 고위급 접촉을 한 미국은 오죽할까.

미국의 코리아 워처들이 북한의 협상술을 파고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실장도 그중의 한 명. 2003년 1월 학자 때 대북 협상 교훈 아홉 개를 내놓았다. 북한 핵문제가 불거진 직후다. 미국의 정책이 갈팡질팡할 때다.

① 겸손하라. 우리는 제3세계의 외딴 나라가 어떻게 유일 강대국의 의지를 훼방놓는지를 아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은 미국 역사상 가장 정보가 없는 나라다.

② 북한과 거래할 수 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북한과 50개가 넘는 협정에 서명했다. 북한은 대체로 이를 존중했다.

③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북한은 노련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그들은 모든 옵션을 열어두고 있다. ④ 불신하고 검증하라.

⑤ 미국의 리더십. 미국의 대북 대화는 한국.일본이 대북 개입정책을 펴는 데 유용한 정치적 명분을 제공한다.

⑥ 중간급 관료로는 안 된다. 북한 문제는 핵 확산에서 인권까지 광범위하다. 이런 도전에는 큰 권한을 가진 고위급 관리가 필요하다.

⑦ 이데올로기와 실용주의. 북한을 싫어한다는 것은 태도이지 정책이 아니다. 북한을 우리가 희망하는 실체로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⑧ 일방주의 대 다자주의. 미국은 국익을 지키기 위해 일방적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일본과 함께할 때 입지는 강화된다. ⑨ 미국의 신뢰. 당신이 대북 정책을 갖지 않으면 북한이 당신의 정책을 결정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발표 얼마 후 6자회담이 생겨났다. 리스는 국무부로 들어갔다. 콜린 파월 당시 장관의 브레인으로. 6자회담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미국이 벼랑 끝 전술을 편다는 소리도 들린다. 아홉 개 교훈은 온건파의 넋두리인가. 이참에 감히 하나를 더 붙인다면. ⑩ Mr. X를 활용하라. 비선(秘線) 없이 성공 없다. 리비아의 핵 포기 결단은 막후 교섭의 산물이다.

오영환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