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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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화술에는 여덟 가지 금기조항이 있다. 미국의 다이제스트사가 펴낸 『더 좋은 글, 더 좋은 말』이라는 책에 나오는 얘기다.
첫째, 독선을 피할 것. 예를 들어 『모든 정치인은 부패하게 마련이다』고 말하기보다는 『모든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고한 영국 역사가 「액튼」경의 말은 더 설득력이 있다. 『어쩌면』『당신 생각으론』『내 생각이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등과 같은 표현은 독선을 피하는 좋은 화술이다.
둘째, 어른이 아이 다루듯 하지 말라. 세상만사 다 아는 체 하고, 혼자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체 하면 자기가 오히려 고립되고 만다.
셋째, 시비 걸 듯 하지 말라. 어떤 경우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비를 위한 시비에 휘말려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자세로는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네 째, 풀 죽지 말라. 대화는 적어도 두 사람이 하는 게임이다. 어느 한쪽에서 풀이 죽어 있으면 그 게임은 재미없다. 활기에 넘쳐 있어야 대화는 앞으로 나아간다.
다섯 째, 불성실하지 말라. 상대를 치켜 줄 때는 치켜주고, 비판할 때는 비판하라. 줏대 없이 치켜세우고 까닭 없이 내려 깍으면 진지한 대화가 되지 않는다.
여섯째, 자기 실속만 차리지 말라. 마치 온 세상을 자기 혼자 요리하는 듯이 떠들고 모든 문제를 자기중심으로 재단하면 진실은 발견되지 않는다.
일곱 째, 혼자서 판을 치지 말라. 우리는 말 잘 하고, 잘 웃기고, 재기 발랄한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대화의 목적이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통쾌한 것도 좋지만 신중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끝으로 중얼중얼 하지 말라. 말은 똑 떨어지게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깊이 생각하고 나서 해야 한다.
요즘 국회 청문회는 말의 홍수를 쏟아놓고 있다. 모처럼 우리 국민들은 우리 나라 의회정치와 민주시민의 수준을 채점하는 시험관이라도 된 기분이다.
시인 「하이네」의 말이 생각난다. 『말, 그로 인해 무덤에서 죽은 자를 불러 낼 수도 있고, 산 자를 묻을 수도 있다. 말, 그로 인해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 수도 있고, 거인을 두들겨 없앨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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