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를 심던 추억|오세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농촌에서 농사지은 것을 직접 가지고 나와 파는 깡시장에 자주 간다. 깡시장에서 채소를 사면 농부들이 손수 가지고 나와 신선하고 값도 싸지만 억센 농사를 지어가며 머리가 허연 농부들의 주름살을 바라볼 때는 고향에서 자식들은 다 키워 도시로 내보내고 쓸쓸히 농사를 지어가시는 노부모님 생각이 나 가격이나 질도 따지지 않고, 부르는대로 돈을 공손하게 건네주며 이따금 『농사가 잘 되었느냐?』 『비가 많이와서 일이 많지 않느냐?』는등 이것저것 농사짓는 안부를 물어보면 장에나와 누가 요기를 시켜드린 것보다 더 기분좋아 하시는것을 본다. 이런날이면 온종일 나에게 좋은 기분이 흐른다.
시장안을 돌아나오다 보니 추녀끝에서 빨간 당파씨를 되로 팔고있는 할머니가 「안팔린다 ! 」는듯 살사람을 기다린다. 나는 그 빨간 당파씨 반되를 사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사과상자와 금이가 놀고있는 고무 자배기를 내어 흙을 담아 당파씨를 줄지어 촘촘히 심었다.
며칠 되니 당파가 줄지어 올라오는것이 파에 물을 줄때마다 신선한 아침을 불러일으킨다.
더우기 텃밭에 당파를 긴이랑에 친정어머님과 심어 나가던 추억이 생생하다.
당파를 잘 먹을 셈으로 아버님 몰래 비료도 한되 훔쳐다 뿌려 파가 잘 올라오게 하던 생각도 나고, 당파씨를 받으려고 이듬해 심으면 고자리가 나서 삭고 하여 길러는 먹었지만 씨를 받지는 못하였던 섭섭한 기억인데 당파씨를 자루에 가득히 가지고 나와 파는 할머니는 당파농사에 정성이 가득하고 진짜 농심이 이마에 주름으로 새겨진 분이라 느꼈다.
파가 올라올때마다 당파종자를 되로 팔던 할머니 생각이 친정어머님 생각같이 떠오른다. <충북 청주시 북문로2가135의5>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