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극으로 막 내린 「탈주 9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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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9일간의 탈주 행각은 유혈 참극으로 끝장났다.
범인들은 가족들의 애타는 자수 호소도 끝내 외면, 권총을 들고 광란의 인질극을 벌이다 한의철·안광술은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고 지강헌은 유리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 때마침 들이닥친 대 테러요원들에 의해 사살되는 유혈 참극을 빚었다.
범인들이 최후를 맞은 서울 북가좌동 일대는 총소리·비명소리 등 공포의 도가니였다.
◇ 권총자살 = 안광술과 한의철은 16일 낮 12시쯤 술에 취한 채 흥분한 지강헌이 창 밖으로 권총을 쏘려는 순간 지를 덮쳐 격투 끝에 권총을 빼앗았다.
안 등은 지에게 "쓸데없는 살상은 말자"고 설득한 뒤 고영서 씨 (50)의 딸 2명이 있던 옆방으로 건너가 한이 먼저 자신의 왼쪽 머리를 향해 총을 쐈고 안도 곧바로 오른쪽 머리에 권총을 발사, 자살했다.
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방안에 있던 대경 양 (16)등 2명은 비명을 지르며 방안을 뛰쳐나와 집밖으로 탈출했다.
주범 지는 이들이 숨진 뒤 총알이 1발 남은 권총을 들고 창가에 다시 나타나 "2명이 자살했다" 고 알린 뒤 자신도 깨진 유리 조각으로 목을 찔렀다.
◇ 체포작전 = 경찰은 권총으로 무장한 특수요원 5명을 뒷담 등을 통해 투입, 창가에서 머리에 총구를 대고 자살 위협을 하던 지를 향해 권총 3발을 쏘며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지는 오른쪽 겨드랑이와 왼쪽 아랫배, 오른쪽 허벅지 등에 관통상을 입고 인질 선숙 양 (22)을 붙잡은 채 쓰러졌다.
한편 강영일은 이에 앞서 오전 11시40분쯤 둘째딸 경숙 양 (19)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가 안에서 자살 극이 일어나자 부엌문을 통해 옆집 베란다로 탈출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 대치 = 범인들은 경찰이 집 주위를 포위한 뒤 자수를 권유하자 주먹 등으로 유리창을 계속 깨뜨리며 창 밖으로 권총을 내민 채 "들어오면 우선 2명을 죽이겠다" 고 거칠게 위협했다.
범인들은 방안에 있는 전축을 크게 튼 뒤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으며 특히 주범 지와 강은 만취된 듯 고함을 치며 큰딸 선숙 양과 둘째딸 경숙 양을 차례로 창가로 끌고 나와 목에 칼을 들이대거나 권총을 겨눠 경찰의 접근을 막았다.
◇ 침입 = 탈주 범들은 15일 오후 9시20분쯤 25시간 인질극을 벌인 서울 창천동 임석이씨 (70) 집을 나와 철길로 30분쯤 걸어 고영서 씨 집에 침입했다.
범인 중 지강헌은 권총으로 가족들을 위협, 안방으로 몰아넣고 가족들의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뒤 건넌방·마루 등에서 TV를 보며 고씨의 부인 김정애 씨 (52) 가 깎아주는 과일을 먹기도 했다.
이어 범인들은 차례로 귀가하는 큰 딸 선숙 양 (22·회사원)·4녀 윤정 양 (14)을 같은 방법으로 끌어들여 안방에 감금했으며 16일 0시30분쯤 고씨가 술에 취해 귀가해 자수를 권유하자 "이× × 간덩이가 부었군" 이라며 "잠이나 자라"고 담요를 뒤집어 씌웠다.
범인들은 14일 오전 1시쯤부터 부엌에 있던 국산양주 2병과 포도주 1병을 마셨으며 취기가 오른 범인들은 새벽 3시가 넘어서자 졸기 시작, 안방·마루 등에서 잠이 들었다.
이때 고씨가 범인들의 코고는 소리에 살며시 일어나 현관을 통해 맨발로 집을 빠져나가 근처 주택가 골목으로 달려가며 "강도야"라고 소리쳤다.
범인들은 이때까지 고씨가 빠져나간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오전 4시20분쯤 선숙 양이 화장실 가는 소리에 깨어 고씨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했다.
◇ 경찰 출동 = 고씨는 주택가 골목길을 30여m쯤 달려가 마침 모래내에서 수색으로 달리던 서울1아8077호 개인택시 운전사 이병태 씨 (40) 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함께 50m 쯤 떨어진 서부경찰서 북암 파출소 (소장 박철금 경위·45)에 신고했다.
박 소장은 오전 4시5분 직원·방범대원 등 4명과 함께 출동, 10분쯤 뒤 도착한 경찰서 기동 타격대·형사 기동대와 함께 고씨 집을 포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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