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로, 시조로 … "장르 구분? 편견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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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뭇 시인에 따르면, 요즘처럼 자유시와 시조 사이가 소원했던 적이 없었다. 예전엔 너나 할 것 없이 장르를 넘나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분명히 선을 긋고 서로 갈 길만 고집한다.

하나 유재영(58.사진) 시인은 다르다. 1971년 자유시와 시조로 등단한 이래 세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시조집을 번갈아가며 발표했다. 며칠 전엔 시조 시인 가운데 최초로 '편운 문학상' 16대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지난해 출간된 자유시집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시학). 시조 분야에선 이미 중앙일보 시조대상 등 여러 문학상을 섭렵했지만 자유시 부문에선 좀체 인정받지 못한 터였다. 소감을 물었더니, 대뜸 일갈이 떨어졌다.

"요즘 우리 시단엔 몹쓸 편견이 있습니다. 시조 쓰는 사람은 자유시를 못 쓴다는 편견이지요. 그걸 깨고 싶은 겁니다. 시조를 쓰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풍토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평소엔 참 순한 사람이다. 말할 땐 소곤소곤 소리를 낮추고, 웃을 땐 양손 번쩍 들며 시원하게 한바탕 웃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조 얘기만 나오면 단호하다. 시조나 자유시나 결국 한가지인데, 지금 시단에 팽배한 "모종의 밥그릇 인식" 탓에 서로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했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긴 설명 필요 없다. 그의 자유시를 읽으면 이내 알 수 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시집에 실린 '득음'이란 시다.

'잠을 이룰 수 없는/밤이었다/고향집에 와서/오십 살이 넘어서야/비로소 듣는//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시조처럼 단아하고 정갈하다. 드러내놓고 율격을 따르지는 않지만, 읽을수록 음보 같은 게 만져진다. 매끄러운 심상 전개에선 오랜 시간 다듬고 매만진 흔적도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시인은 원체 과작(寡作)이다. 시력 32년 동안 시집 다섯 권 겨우 냈을 뿐이다. 그러나 시인의 생각은 달랐다. "백석이 '사슴' 한 권으로 우리 시의 문체를 바꿨던 걸 생각하면 그래도 난 많은 편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시상식은 2일 오후 4시 서울 한국현대문학관(02-2277-4857).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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