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민주화 흐름 발맞출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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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방부 대변인이 오홍근 테러사건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국민과 군의 관계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경각심이었다.
두 명의 장성까지 포함된 7명의 현역군인들이 범인으로 구속됨으로써 이 사건 자체는 표면상 일단 마무리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끔찍한 테러사건이 국민들의 마음에 불러일으킨 충격과 분노와 불안감은 쉽게 사그라지기 어려울 것 같다.
이 사건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시종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번 사건에 임하는 군의 자세에 나타난 이율성이다. 테러와 같은 폭력적 방법은 용납할 수 없지만 이번 사건의 동기가 된 「청산해야할 군사문화」 기사에 대한 불만 자체에는 동조한다는 군쪽의 일관된 메시지가 그것이다.
그런 불만은 군부 안에서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 것 같다. 연초 정호용 국방장관의 이임 기자회견에서, 또 지난 6월 박희도 장군의 이임사에서 군의 불만은 맥을 이어 표출되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처음으로 현역군인이란 사실이 내부에 알려진 직후 군부 안에서는 문제의 기사를 배포해서 읽었으며 일반적 반응은 『당할 짓 했다』는 것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와 같이 군사문화에 대한 사회의 비판에 대해 군 내부에 불만이 쌓여있는 한 이번 사건의 뿌리가 뽑혔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군사문화의 청산은 6·29 이후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민주화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역군에 대한 비판이 아니고 우리 사회 안에 침투해있는 군사문화의 비민주적 요소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자기 비판 같은 것이다. 군사문화란 지난 27년 동안 정치를 독점해온 일부 정치군인들에 의해 사회 구석구석에 심어진 권위주의 행태를 총괄해서 지칭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를 추진하는 한 그런 나쁜 유산의 청산을 제일의 조건으로 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군사문화란 현대식 군대가 마땅히 지녀야할 속성들의 집합체인 이상 그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의 목숨과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대로서는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아래서 효율성을 제1의 가치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양 속담처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되며, 수단보다 결과가 중시된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수의 의견에 관계없이 관철하는 엘리티즘도 군대 안에서는 중요한 속성일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특수문화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개별적인 삶을 추구하는 일반사회에 퍼져나갈 때 엄청난 무리가 파생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군사정권 아래서 그런 현상을 직접 고통스럽게 체험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정권안보를 위해,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능하도록 지탱해주는 사회의 제제도들이 왜곡되고 정치권력에 종속되는 것을 보아왔다. 민주화란 그런 비정상적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시발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6·29 선언과. 두 차례 선거를 통해 드러난 국민들의 투표성향은 더 이상 그런 문화에 사회가 압도되어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합의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대세임에 틀림없다.
요즘 갑자기 좌우익 논쟁을 불러일으켜 그와 같은 민주화 대세의 핵심 논점을 흐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변혁의 주조는 계속 민주화를 지향하는 국민적 합의인 것이다.
군은 이러한 국민적 합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 좌우익의 대결이란 냉전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민주화는 좌쪽으로의 흐름이라고 속단하기 쉽다. 그러나 민주화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우쪽으로 치우친데 대한 반작용으로, 국민 대다수가 합의하는 보다 온건한 중간지점에 거대한 광장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그와 같은 움직임은 보다 높은 차원의 국가발전단계로 도약하기 의해 필수적인 변신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직능의 분화는 그런 변신에 꼭 필요한 활력소다. 이 추세에 맞춰 군도 변신할 때가 왔다.
민주화와 군사문화의 청산문제에 대한 민·군간의 시각차이는 그와 같은 새시대의 흐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이번 불행한 사건이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다면 바로 그러한 인식의 전환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가를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두성<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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