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문학인의 사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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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 42개국에서 온 시인·작가·문필가 등 7백 여명의 모임인 국제 펜 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비회원국가인 소련이 처음 서울대회에 왔고 유고, 헝가리 등 동구권국가들과 중국작가들도 대거 참석했다. 지난 70년의 서울 펜대회 보다 내용과 형식면에서 압도하는 동서화합의 문학올림픽이라는 점에서 이번 대회가 갖는 의미는 크다.
체제와 문화적 배경이 각기 다른 세계의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떠한 문학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는 주목할 만 하다. 특히 소련을 대표해서 참석한 저항시인「예프투넨코」는『문인은 열린 사회로 가는 주체』라는 자신의 문학관을 밝혀 더욱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자유이기 때문에 자유를 위해서는 일터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겠다』는 중국소건 대표의 주장도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스탈린」과 모택동의 공산독재를 경험한 문학가들의 확신에 찬 주장이기 때문에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건강하게 들린다. 아직도 분단문학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문학 현실 때문에 이들의 주장이 새삼 돋보일지도 모른다.
「스탈린」과「브레즈네프」의 공산독재에 항거해서「열린 사회」에로의 길을 찾는 원동력이 문학이었다는「예프투셴코」의 진술은 문학인의 창작정신과 일치한다.『시인은 미래를 훔쳐보는 스파이』라는 그의 표현은 오히려 한 걸음 앞선 시인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동구권과의 교류와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열린 사회에로의 의지를 천명한바 있는 최근의 우리 사회는 이들과의 만남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더 없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산업화 사회의 갈등과 민주화의진통을 격렬하게 겪고 있는 오늘의 변동 사회 속에서 문학이 맡아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문화는 모든 살아 있는 사물과의 개인적인 연 관에 의해서만 진행된다』는 주제발표의 요지는 그 답을 대신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스러운 창조행위가 보장돼야 함과 동시에 상황의 편의에 따라, 또는 체제와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동원되는 일체의 폭력은 거부되어야 함이 열린 사회 속의 문학속성인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한 숱한 도전과 비극의 시련 속에서도 한국인을 파멸로부터 구한 것은 한국의 말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한 참가시인의 지적은 더욱 적절하게 느껴진다.
열린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문학인이 맡아야 할 사명은 열린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동사회 속에서 작가가 담당해야 할 사명은 다양한 개성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갖춰야 하며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킬 줄 아는 용기를 지니는 것이다.
비록 체제와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할지라도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동과 서가 다를 바가 없고 문화의 선진성과 후진성이 문제되지 않는다. 한 시대 한 사회를 관통하는 양식의 대변자로서 문인의 붓은 닫힌 사회를 열어 주는 첨병의 역할을 맡아야 하고 개개인의 문학적 자기인식도 세계인식에로 폭넓게 승화될 수 있어야 한다.
비 회원국인 소련도 이번 서울대회에서 정식 펜클럽회원에 가입하려는 뜻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문인들을 펜 회원국으로 가입시키고·남북작가회의를 열어 보겠다는 우리주최측의 의도 또한 모두 열린 사회에로의 길에 동참하자는 데 그 뜻이 있다. 이 동참의 의미가 구속문인에게까지 확대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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