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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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도청이 옳으냐 그르냐의 시비는 남의 침실을 들여다보아도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시비와 같다.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는다』는 법조문은 다른 법도 아니고 바로 헌법18조에 명시되어 있다. 역대 어떤 헌법도 이 조항만은 손댄일은 없었다.
그러나 정부는 난데없이 「도청금지법」을 만든다고 한다. 그동안 법만 철석같이 믿고 살아온 국민들만 고지식했던 셈이다.
그런 법을 만든다면 고마워해야 할텐데 그보다는 여태 도청을 당해온 것 같아 불쾌감이 앞선다.
법이 어떻다는 차원을 넘어 공권력은 법의 뒤에 숨어서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앞으로 도청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과연 그 법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문제는 정권의 도덕적 수준에 있다.
현대문명의 도청기술은 그까짓 전화줄에 매달려 남의 말을 엿듣는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도 순진한 원시적인 얘기일 뿐이다. 오늘의 과학기술은 의도만 있으면 무소부위로 어디서나 남의 말을 정탐할 수 있다. 1980년 KAL 007기가 소련 요격기에 의해 격추당했을때 미국은 그 내막을 훤히 알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을 못알아 듣는군. 민항기란 말이야.』
소련요격기의 조종사가 지상관제탑과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미국의 전자 감청 기지는 그대로 녹음을 따두었다. 소련은 민간비행기인줄 몰랐다는 변명을 아무리해도 소용없게 되었다. 하늘의 대화도 이렇게 녹음이 되는 세상인데, 무슨 법으로 그 유령같은 도청을 잡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요즘은 레이저빔까지 등장했다. 사람의 말이나 타자소리까지도 레이저 광선을 통해 그 파장을 분석해 문자로 맞추어낼 수 있다. 이 경우는 도청의 증거도 잡히지 않는다. 소련은 최근 모스크바에 신축중인 미대사관의 타이프라이터에 전자감응장치를 달아놓고 타자치는 소리를 추격하려다가 발각된 일도 있었다.
이런 도청들이 만의하나 국내에서 드러날 경우 범인은 추적조차 할 수 없다.
무슨 법을 갖다대도 도청은 그림자조차 뒤쫓을 수 없다. 결국은 그 나라의 도덕적 수준과 양식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고리적 옛날 생각만으로 법을 만들면 국민이 믿을 것으로 여기지만 필요한 것은 실증과 도덕적 신뢰를 먼저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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