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당신의 온도는 몇 도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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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노진호
노진호 기자 중앙일보 대중문화
노진호 대중문화팀 기자

노진호 대중문화팀 기자

지난달 취재차 컬링 패러디 영상을 찾다 알게 된 A의 이야기다. 2012년 SBS ‘케이팝스타 시즌2’에 나갔던 A는 당시 깔끔한 고음으로 주목받았고 결국 최종 10인에 든다. 하지만 그저 자신감을 얻으려 나온 본인은 살아남고 동료들이 떨어지자 A는 견딜 수 없었다. 노력하는 A 모습에 적지 않은 응원 글이 올라왔지만 결국 A는 하차를 택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A는 다시 꿈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A는 최근 팀을 구성해 디지털 싱글 음원을 냈다. A는 “내 노래로 사람들이 위로받는 모습이 좋다”며 “자진 하차했던 옛 선택이 나를 더 강하고 간절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누군가 ‘기자직’의 가장 큰 장점을 물으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 일을 하게 된 이유를 묻는 일”이라고 답한다. 그 대답에는 원형의 기대·설렘·희망 같은 것들이 묻어나는데, 듣고만 있어도 힘이 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답이 거창한 건 아니다. 그저 즐겁다거나 재밌다거나. 기사 쓰기엔 맥 빠지는 답이지만 보통은 이게 정답이었다.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싱어송라이터 ‘강’은 근처 여고 축제에 가 폼을 잡아보려 밴드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2집 가수가 됐고, 올 초 알게 된 배우 지망생 ‘김’은 영화 ‘저수지의 개들’을 보고 스토리의 매력에 빠져 지금은 밥 굶어가며 연기를 공부하고 있다.

너무나 사소한 이유 같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에게 중심을 뒀기에 흔들림이 적다. 『사소함이 만드는 성공의 법칙』의 저자인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너무 당연해서 간과하기 쉬운 사소함이 결국 거대한 힘의 결정체를 만든다고 말한다. 식당을 예로 들면, 음식의 맛보다는 화장실·주방의 청결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를 적용해보면 어떨까. 힘든 취업 시장이 만든 환경 앞에, 연봉이나 안정성 앞에 가장 당연해야 할 가치를 사소하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달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가 설문조사(28만여 건)를 통해 삶의 만족도와 불안함 등을 종합한 ‘안녕 지수’를 알아본 결과, 20·30대의 안녕 지수가 각각 52점으로 전 연령층(40대 54점, 50대 58점) 대비 가장 낮았다. 어쩌면 우리가 저버린 사소함이 우리 자신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A 이야기. A의 팀명은 ‘오늘의 온도’다. 온도는 수치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따뜻하다’ ‘쌀쌀하다’처럼 감정과 연결돼 표현되기도 한다. A는 “사람 마음에도 그런 온도가 있지 않겠느냐”며 “사람의 온도에 귀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오늘 하루 정도는, 내 마음 온도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노진호 대중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