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금융의 중심은 증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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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융을 구성하는 세 개의 축인 은행, 증권 및 보험이 상호 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해야 바람직하나 한국의 경우 은행 맏형주의에 치중해 증권 및 보험이 상대적으로 왜소한 양극화 현상을 보여 왔다. 산업구조가 기술집약적으로 나아감에 따라 사업위험이 증대하고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은행 집중이 심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어 개방과 경쟁을 통한 증권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통합법의 제정이 요구돼 왔다.

통합법의 의의 및 중요성에 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통합법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위험이라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가 바로 금융이다. 금융기관은 자본력으로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을 적극적으로 취함으로써 수익을 창조할 수 있다. 통합법으로 투자금융회사들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여건이 갖춰졌지만 이런 상품 개발 능력이 빛을 발하려면 투자금융회사들의 계산된 도전정신이 문화로 정착되도록 정부를 비롯한 시장 참가자들은 노력해야 하며 이를 통해 골드먼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이 우리나라에도 탄생할 수 있다.

둘째, 증권회사는 대형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든지 전문화를 통해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하나 통합법이 제정돼도 대형화 내지 전문화가 쉽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작다. 증권회사들은 고유 업무인 중개업에 비해 자본을 과다 보유하고 있어 자본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증시는 주기적으로 활황 장세를 보이고 있어 증권회사는 쉽게 중개업에 안주할 가능성이 크다. 즉 은행처럼 부실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어 변화와 개혁에 대해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증권회사의 대형화를 위한 틀이 마련됐다 해도 기대한 만큼 대형화가 촉발될지는 의문이란 얘기다. 따라서 대형화를 유도하기 위한 적절한 유인책이 마련돼야 하며 은행업이 자회사를 통해 증권업에 진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형화된 투자금융회사가 자회사를 통해 은행업에 진출하는 수준이 돼야 외국의 유수 투자은행에 필적할 수 있는 한국의 투자은행이 탄생할 수 있다.

셋째, 통합법은 증권회사에 다양한 업무의 겸영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간 이해 상충의 소지가 있고 또 은행 등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해 상충은 감독의 선진화 내지 내부 통제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또 은행권의 반발 역시 금융허브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합리적이지 않다.

넷째, 자본시장의 상부구조 못지않게 하부구조인 청산결제 기능의 재정립도 자본시장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반드시 이룩해야 할 과제이나 이에 대한 언급이 통합법에는 없다.

우리는 실물부문에 비해 금융이 약하고 이것이 선진경제로의 도약을 가로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은행산업의 쏠림현상마저 있어 금융 양극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금융의 중심에 증권이 우뚝 서 있어야 혁신형 기업의 출현을 앞당길 수 있다. 통합법이 이런 기폭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