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은 욕망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식물도 사람처럼 햇볕 좋고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다. 질경이도 그렇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서리풀공원의 계단. 하나의 계단이 끝나고 또 하나의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마다 질경이가 자리를 잡고 있다. 내려가는 사람의 발뒤꿈치가 끝나는 지점이자 올라가는 사람의 발가락 부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신발에 밟힐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곳이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 밟히는 건 피할 수 없다.
'풀밭이 좋을 테고, 화단도 좋을 텐데…'
풀밭은 해를 향한 경쟁이 치열하고, 화단은 뽑혀 나갈 두려움이 크다. 어느 풀인들 짓밟히며 살고 싶겠는가. 숨 막히는 경쟁과 제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피해 질경이는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가 내 자리다'
밟혀도 죽지 않는다. 질긴 이파리는 질기겠다는 의지다. 질기고 질겨서 질경이다. 밟고 지나가는 신발에 씨앗을 붙인다. 그렇게 생명을 퍼뜨린다. 밟고 지나가는 신발은 고난이면서 생명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풀은 눕는다. 바람이 지나가면 풀은 일어난다. 그러나 눕고 서는 건 풀들의 이야기. 질경이는 일어설 일도 누울 일도 없다. 바람은 그저 스쳐 가는 바람일 뿐이다.
글·사진=김춘식 기자